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예산 절감을 이유로 투표용지를 유권자 수보다 적게 인쇄하는 관행을 유지하다 서울 송파구와 강남구 등지에서 투표가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를 초래했다. 선관위 내부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비판이 쏟아지는 가운데, 이번 사태가 선거의 공정성에 대한 불필요한 의혹을 확산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서울 송파구와 강남구, 광진구, 동작구 등 일부 지역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조기에 소진되어 유권자들이 대기번호표를 들고 마감 시간 이후까지 기다리는 소동이 벌어졌다. 현장에서는 투표 마감 시간인 오후 6시를 넘겨서도 용지가 도착하지 않아 투표권 행사가 지연되는 등 선거 행정의 허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시민들은 투표소에서 장시간 대기하며 선관위의 미숙한 행정 처리에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선관위는 통상 지방선거의 낮은 투표율을 고려하여 전체 유권자의 약 70% 분량만 투표용지를 사전에 인쇄해온 것으로 확인되었다. 선관위에서 30년간 근무한 퇴직 공무원 A씨는 "사전투표율이 높을 경우 예산 절감을 위해 일부만 인쇄하는 경우가 있으나, 원칙적으로는 유권자 수에 맞춰 100%를 준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자신이 재직하던 시절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며 성토했다.
중앙선관위 고위직을 역임했던 인사들 역시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으로 투표율을 자의적으로 예측하여 용지 수량을 조절해온 구태의연한 관행을 지목했다. 이러한 관행이 투표 현장의 실질적인 수요를 반영하지 못하면서 참정권 행사를 방해하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선관위 내부의 안일한 대응이 선거 관리의 기본인 물자 보급 실패를 불러왔다는 지적이 뼈아프다.
서울시 교육감 후보를 포함하여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한 후보자가 예년보다 많았던 점도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가속화한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박종희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서울의 경우 교육감 후보가 압도적으로 많아 정밀한 계산이 필요했으나 선관위가 이를 간과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선거인 명부 관리와 동일인 대조에만 집중한 나머지 기본적 물자 소요 예측에 실패했다는 평가다.
선관위가 동일인 대조나 명부 관리 등 기술적 측면에만 치중한 나머지 기본적인 물자 공급 계획에서 치명적인 오류를 범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전문가들은 행정 편의주의적 사고가 헌법상 보장된 참정권 행사에 차질을 빚게 한 이번 사태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국가의 기본을 지탱하는 선거 행정에서 효율성만을 강조하다 발생한 사태라는 분석이다.
이번 관리 부실은 공정한 선거 관리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일각에서 제기하는 부정선거 의혹에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사안의 심각성이 크다. 조진만 덕성여자대학교 교수는 "송파구 등 특정 지역에서만 용지가 부족한 이유에 대해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으며, 선관위의 대처가 매우 아쉽다"고 지적했다. 실제 현장에서는 부정투표와 연관된 것이 아니냐는 유권자들의 항의가 빗발치기도 했다.
선관위는 이번 사태가 특정 지역의 높은 투표 열기와 행정적 착오가 겹친 결과일 뿐 의도적인 투표 방해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오후 6시 이전에 도착한 모든 유권자에게는 투표 기회를 보장했으므로 법적 절차상의 문제는 없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국가 기관의 행정적 신뢰도가 하락한 상황에서 이러한 해명은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온다.
선관위 측은 오후 6시 이전에 투표장에 도착한 유권자에 대해서는 대기번호표를 발행하여 전원 투표권을 보장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투표용지 부족이 실제 투표권 박탈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므로 선거 결과의 유효성에는 문제가 없다는 논리다. 기계적인 중립성을 유지하면서도 행정적 과실에 대한 사후 수습에 주력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향후 선관위는 투표용지 인쇄 및 배분 프로세스를 전면 재점검하고 유권자 수에 기반한 100% 공급 원칙을 확립해야 할 과제를 안게 되었다. 부실 관리로 인한 사회적 비용과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개선이 시급한 시점이다. 투표 시스템의 현대화 못지않게 투표용지 공급과 같은 기본 원칙을 준수하는 것이 선거 관리의 핵심임을 다시금 확인해야 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선거 관리 업무 전반에 대한 국회 차원의 감사와 재발 방지책 마련이 강력하게 요구될 것으로 보인다. 선거의 공정성은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의 투명성과 원활함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선관위는 이번 사태를 뼈저린 교훈으로 삼아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근본적인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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