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원·달러 환율 1,540원 돌파 17년 만에 최고치... 당국 구두개입도 무력화

정휘 기자

달러-원 환율이 외국인의 기록적인 주식 매도세와 정국 불안의 영향으로 장중 1,540원을 돌파하며 1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외환당국이 과도한 쏠림에 대한 즉각적인 조치를 예고하며 구두개입에 나섰으나, 시장의 강력한 달러 매수 수요를 억제하기에는 역부족인 모습이다. 외국인은 19거래일 연속 국내 주식을 팔아치우며 자본 유출을 가속화하고 있으며, 삼성전자 등 대장주의 추가 하락이 환율 상단을 더욱 높이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야간 거래에서 상승폭을 극대화하며 1,530원 선을 넘어 거래를 마감했다. 5일 새벽 2시 달러-원 환율은 전장 서울외환시장 종가 대비 15.60원 급등한 1,532.00원을 기록했다. 뉴욕 시장으로 접어들며 환율은 장중 고점을 1,540.30원까지 높였는데,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 10일 이후 약 1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썰물 같은 자금 이탈이 이번 환율 폭등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다.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19거래일 연속 순매도 행진을 이어가며 원화를 달러로 환전하려는 강력한 수요를 형성하고 있다. 이날 하루에만 유가증권시장에서 6조 6,662억 원어치의 주식을 순매도했으며, 올해 들어 누적 순매도액은 115조 6,82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국내 증시의 핵심 종목인 삼성전자의 주가 급락은 외환 시장의 불안 심리를 더욱 자극하고 있다. NXT 애프터마켓에서 삼성전자 주가는 정규장 대비 3%포인트 가까이 추가 하락하며 -5.13%의 낙폭을 기록했다. 외국인의 주식 매도 궤적과 달러-원 환율의 상승 곡선이 일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증시 시황 악화가 환율 상승을 견인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양상이다.

한국 지방선거 이후 불거진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도 원화 가치를 끌어내리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3일 선거 이후 서울 일부 선거구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이에 따른 재투표 요구 시위가 확산되면서 정국은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시장 참여자들은 이러한 정국 불안을 한국 경제의 대외 신인도 하락 요인으로 받아들이며 원화 자산 처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외환당국의 수장인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이날 오전 긴급 메시지를 통해 시장 진정에 나섰다. 구 부총리는 "과도한 쏠림에 대해서는 필요한 조치를 즉시 취할 것"이라며 시장의 투기적 움직임에 경고를 보냈다. 하지만 환율이 1,400원대를 넘어 1,500원대 중반을 위협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구두 개입은 시장에서 사실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달러 인덱스의 하락세에도 불구하고 원화만 독자적인 약세를 보이는 '디커플링' 현상도 뚜렷하다. 뉴욕 시장에서 이란 종전 협상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며 달러 인덱스는 낙폭을 확대했으나, 달러-원 환율은 오히려 상단을 10원 가까이 늘렸다. 이는 현재의 원화 약세가 대외적인 달러 강세보다 국내의 수급 불균형과 정치 리스크라는 내부적 요인에 더 크게 기인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주요국 통화와의 비교에서도 원화의 가치 절하 속도는 가파른 편이다. 새벽 3시 13분 기준 달러-엔 환율은 159.987엔, 유로-달러 환율은 1.16170달러를 기록하며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흐름을 보였다. 반면 엔-원 재정환율은 100엔당 956.06원, 역외 위안-원 환율은 225.74원에 거래되며 인근 국가 통화 대비 원화의 상대적 약세가 두드러졌다.

이날 외환 시장의 변동성은 극도로 확대되며 시장 참여자들의 불안감을 고조시켰다. 장중 고점 1,540.30원과 저점 1,520.00원 사이의 변동폭은 20.30원에 달했으며, 야간 거래를 포함한 총 현물환 거래량은 202억 1,700만 달러를 기록했다. 17년 만에 마주한 1,540원 선이라는 심리적 마지노선 붕괴는 향후 환율 향방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더욱 낮추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환율 상승이 과도하며 조만간 기술적 반등이나 조정이 올 것이라는 낙관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외국인의 19거래일 연속 매도세가 멈추지 않는 한 수급상의 불균형을 해소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시장 질서의 회복을 위해서는 당국의 실질적인 시장 개입과 더불어 정국 안정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비판적 시각이 힘을 얻고 있다.

향후 외환 시장은 외국인의 매도세 진정 여부와 국내 정치 상황의 전개에 따라 극심한 변동성을 이어갈 전망이다. 당국의 구두 개입이 무력화된 상황에서 시장은 이제 실질적인 매도 개입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기업들은 환율 1,500원 시대의 장기화 가능성에 대비해 수출입 결제 대금의 환리스크 관리를 강화하고 자금 조달 계획을 재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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