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정부 'AI 혁신' 역행한 선관위의 고집이 헌정 사상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 불렀다

음영태 기자
기사 이미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수요 예측 과정에서 인공지능(AI) 기술을 전면 배제하며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초래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180억 원을 투입해 'AI 민주정부'를 추진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선관위는 생성형 AI의 권고치보다 5%포인트 낮은 인쇄 기준을 고수하다 행정적 실패를 자초했다.

이재명 정부가 행정 전반에 인공지능 기술을 도입하려는 정책 기조를 강화하고 있으나 선관위는 여전히 과거의 관행에 의존하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데이터 기반의 정밀한 수요 예측 시스템 부재가 결정적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부가 지향하는 효율적 행정 가치와 선관위의 보수적 운영 방식이 충돌하며 국민의 참정권 행사에 차질을 빚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행정안전부는 123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세계 최고 수준의 AI 민주정부 실현을 목표로 설정하고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디지털정부혁신실을 AI정부실로 전환하고 공공 AI 서비스 지원사업에 총 18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는 등 행정 효율성 극대화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이는 공무원이 생성형 AI를 활용해 업무 도구를 직접 개발하고 실험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국가정보원과 협력하여 공공 부문 AI 활용 가이드라인을 수립하는 등 정부의 혁신 속도는 가팔라지고 있다. 행안부는 AI 기술 확산을 통해 공공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공무원의 업무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 차원의 기술 혁신 노력은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는 선관위의 장벽에 막혀 제대로 된 시너지를 내지 못하고 있다.

선관위는 이번 6·3 지방선거 과정에서 딥페이크 영상 적발 등 감시 업무에는 AI를 활용했으나 정작 선거 행정의 핵심인 투표용지 수급 관리에서는 이를 배제했다. 사전 투표 수요 예측 과정에 AI를 활용했는지에 대한 질의에 선관위 측은 AI를 전혀 활용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선관위 관계자는 AI 이용 여부가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라고 해명하며 기술 도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생성형 AI 서비스인 챗GPT와 제미나이 등을 활용해 역대 선거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는 선관위의 판단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주요 AI 서비스들은 과거 투표 패턴과 인구통계학적 요인, 날씨 등 외부 변수를 종합하여 투표용지를 선거인 수의 최소 55%에서 안전하게는 60% 이상 준비해야 한다고 예측했다. 이는 선관위가 실제 현장에서 적용한 기준과 상당한 격차를 보이는 수치다.

실제로 투표용지 부족 현상이 심각했던 서울 송파구의 경우 선관위는 선거일 당일 인쇄 매수를 선거인 수의 50% 수준으로 설정했다. 일부 투표소에서 60%를 적용하기도 했으나 전체적인 예측 실패로 인해 현장에서는 초유의 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하고 말았다. 데이터 과학에 기반한 AI의 예측치를 참고했더라면 충분히 예방 가능했던 인재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선거 사무의 객관성을 확보하고 행정적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AI를 '레드팀'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이주민 경희사이버대 AI빅데이터경영전공 주임교수는 "변수가 명확하기 때문에 선거 사무에 AI를 도입하는 것은 충분히 생각해볼 만하다"며 사람이 분석하기 어려운 사회관계망서비스의 흐름까지 AI가 포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송세경 한국생성AI파운데이션 회장 역시 변화하는 환경에서 습관적 판단에만 의존하는 관리 방식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송 회장은 "재난과 안전 등 분야에 이미 폭넓게 활용하고 있는 AI를 선거에만 안 쓰고 있었던 것"이라며 지금처럼 변화가 심한 세상에서 데이터 없는 관리는 재난을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선관위의 폐쇄적인 행정 문화가 국가적 혼란을 야기했음을 시사한다.

물론 인공지능 기술이 지닌 할루시네이션 현상이나 데이터 편향성에 따른 공정성 논란은 선거 행정 도입의 실질적인 장애물로 꼽힌다. 공공 부문에서 AI 정책이 실패했을 때 그 책임 소재를 명확히 규정하기 어렵다는 점도 선관위가 도입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기술적 불완전성이 선거라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 역시 기계적 중립성 차원에서 무시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결국 선관위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독립기관의 자율성이라는 명분 뒤에 숨지 말고 행정 효율성을 위한 기술 혁신에 전향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압박을 받게 됐다.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이 대국민 사과를 통해 고개를 숙였으나 실질적인 시스템 개선 없이는 향후 선거에서도 유사한 행정 실패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향후 선거 관리의 신뢰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중심의 과학적 검증 체계 구축이 시급한 과제로 남았다.

저작권자 © 재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