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가 한라봉 묘목과 신장 투석기 등 1억 6천만 원 규모의 물품을 북한에 지원하며 민간 차원의 인도적 교류를 재개했다. 통일부의 정식 승인을 거친 이번 물품은 중국 다롄항을 경유해 지난달 북한 남포항에 최종 도착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사실상 단절됐던 대북 인도적 협력이 지자체와 민간 차원에서 소규모로 재개되는 신호탄으로 풀이된다.
제주도는 남북협력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1억 6천만 원 상당의 대북 협력 물품이 지난달 북한 남포항에 입항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지원 품목에는 한라봉 묘목과 소나무재선충 방제 약제, 신장 투석기 및 관련 소모품, 비닐하우스 시설 등이 포함됐다. 이번 사업은 제주도가 지난 3월 통일부에 대북 반출 신청을 한 뒤 적법한 검토 과정을 거쳐 승인받은 결과다.
지원 물품은 지난 4월 1일 인천항을 출발하여 중국 다롄항으로 이송된 뒤 선박편을 통해 5월 4일 북한 남포항에 도착했다. 제주도는 이번 지원이 북한 측 조선장애자후원회사와 지난 2월부터 진행해 온 실무 협의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고 설명했다. 다만 북한 측으로부터 물품 수령에 대한 공식적인 회신은 아직 접수되지 않은 상태다.
이번 대북 지원 사업은 지난해 11월 제주도지사와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의 면담을 기점으로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당시 면담에서 제주도는 감귤 보내기 사업 등 제주형 남북교류협력사업의 재개 방안을 논의하고 정부의 협조를 구했다. 이후 제주도 남북교류협력위원회는 남북협력기금 사용을 의결하며 사업 추진을 위한 재원을 확보했다.
제주도 대표단은 지난 2월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 관계자들과 만나 감귤과 의료복지, 산림 방제 분야를 우선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이 과정에서 오영훈 제주도지사가 북한 대남공작원 출신인 리호남 전 주중 북한대사관 참사와 접촉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제주도는 해당 보도에 대해 구체적인 확인을 거부하며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통일부는 이번 물품 반출이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에 따른 적법한 절차에 의해 승인되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윤민호 통일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자치단체를 정부 당국이 아닌 법인의 하나로 규정하며 이번 사업의 성격을 규정했다. 이는 이번 지원이 당국 간 공식 교류가 아닌 민간 및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인도적 사업임을 강조한 것이다.
남북 관계 전문가들은 이번 지원이 경색된 남북 관계 속에서 최소한의 통로를 유지하려는 시도라고 분석한다. 민간단체의 한 관계자는 "북한이 완전한 대남 단절을 선언한 후 일부 비공개 인도 협력이 작년부터 성사됐지만 이를 남북 인도적 협력 재개로 해석하기는 이르다"고 밝혔다. 대북 인도적 협력은 1995년 시작된 이래 윤석열 정부 때인 2024년 처음으로 실적이 무(無)를 기록한 바 있다.
대북 인도적 협력은 과거 햇볕정책 시절부터 이어져 온 관례였으나 최근 국제 정세 변화로 인해 민간 차원의 협력마저 고사 위기에 처해 있었다. 제주도의 이번 지원은 이러한 공백기 속에서 지자체가 보유한 자원을 활용해 독자적인 협력 모델을 가동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다만 물품의 최종 수령 여부와 후속 조치에 대한 투명한 공개는 향후 과제로 남았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도발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물품 지원이 대북 제재의 실효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특히 지원된 물품이 목적 외의 용도로 전용될 가능성에 대한 철저한 사후 검증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도적 지원이라는 명분이 국가 안보와 시장 질서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보수적인 관점의 비판이 존재한다.
향후 제주도는 이번 사업의 성과를 바탕으로 양돈과 관광산업 분야까지 협력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하지만 북한의 태도 변화와 한반도 주변 정세의 불확실성은 여전히 사업 지속의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인도적 지원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법치주의 원칙에 입각한 교류 질서를 확립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