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이란과의 전쟁 종식을 위한 합의의 일환으로 이란의 원유 및 연료 수출을 즉시 허용하기로 하면서 중동 정세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미국은 제한적 제재 완화를 통해 이란에 경제적 유인을 제공하는 대신 호르무즈 해협 개방과 핵 프로그램 축소 등 핵심 요구사항을 관철하겠다는 전략을 내세웠다.
이번 조치는 미국과 이란 간 군사적 긴장 완화뿐 아니라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됐다.
▲ 원유 수출 즉시 허용…이란에 선제적 경제 혜택 제공
협상 내용을 잘 아는 관계자들에 따르면 미국은 이번 주 체결되는 합의와 동시에 이란의 원유 및 연료 판매를 허용하기로 했다.
이번 조치는 단순히 원유 수출만 허용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16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원유 판매에 필요한 은행 거래와 운송, 보험 서비스 등도 제재 면제 대상에 포함되면서 이란이 국제 시장에서 정상적으로 석유를 판매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이는 미국이 이란의 협상 참여를 유지하고 군사적 충돌을 중단시키기 위해 제공한 초기 보상 성격의 조치로 평가됐다.
▲ 미국 봉쇄 뚫은 유조선 출항…시장 정상화 신호
비영리단체 '핵무장 반대 이란연합(UANI)'에 따르면 이란 원유를 실은 초대형 유조선 디오나(Diona)가 차바하르 항을 출발해 미국의 해상 봉쇄를 통과한 뒤 오만만을 벗어났다.
이는 미국이 지난 4월 봉쇄 조치를 시작한 이후 처음 확인된 사례였다.
이어 또 다른 초대형 유조선인 히어로 II(Hero II) 역시 봉쇄선을 통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에서는 이를 사실상 이란 원유 수출 재개의 신호탄으로 해석했다.
▲ 단계적 제재 해제와 동결자산 접근 논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이 검토한 양해각서 초안에는 원유 수출 허용 외에도 향후 협상 진전에 따라 광범위한 제재 완화와 동결자산 해제, 전후 복구 자금 지원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미국 정부는 모든 혜택이 즉각 제공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미국 고위 당국자는 이란이 원유 판매에 대한 제재 완화 혜택을 먼저 받더라도 장기적 제재 해제는 호르무즈 해협 개방과 핵 프로그램 관련 미국 요구사항 이행 여부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로서는 수백억 달러 규모의 동결 자금에 대한 즉각적인 접근은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Photo : [UPI/연합뉴스 제공])
▲ 휴전 연장·호르무즈 개방 포함
이번 양해각서에는 이란과 이스라엘 간 교전 중단을 연장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레바논을 포함한 전선에서 휴전이 유지되며 미국과 이란이 서로 시행했던 해상 봉쇄 역시 해제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세계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의 정상화는 국제 원유 공급망 안정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평가됐다.
또한 이번 합의는 향후 이란 핵 프로그램에 대한 장기 협상의 기반을 마련하는 역할도 수행하게 됐다.
▲ 미국·이스라엘 내부 반발도 확산
하지만 미국과 이스라엘 내부에서는 반대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일부 정치권과 안보 전문가들은 이란으로부터 핵심 양보를 확보하기 전에 경제적 압박을 완화하는 것은 협상력을 스스로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연구소의 이란 전문가 파르진 나디미 선임연구원은 원유 수출 허용이 미국의 핵심 압박 수단을 포기하는 조치라고 평가했다.
그는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 개방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정 수준의 양보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또한 미국은 중동 지역 군사력을 유지하는 한 필요할 경우 언제든 이란 원유 수출 봉쇄를 재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일(Photo : [로이터/연합뉴스 제공])
▲ 핵 포기 시 대규모 경제 지원 가능성
이번 합의는 이란이 미국 요구에 따라 농축우라늄 비축분을 폐기하고 핵 프로그램을 해체할 경우 훨씬 큰 규모의 경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주요 내용 가운데 하나는 전쟁 피해 복구를 위한 지역 재건개발기금 조성이었다.
트럼프 행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양국이 약 3,000억 달러 규모의 재건기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약 1,000억 달러 규모로 추산되는 동결자산 일부를 이란이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협상 테이블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측은 이란이 실질적 행동에 나설 경우 경제 개방과 제재 완화에 매우 관대한 접근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 트럼프의 정치적 부담…2015년 핵합의와 비교
이번 합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으로 평가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2015년 핵합의 이후 이란에 현금을 제공한 것을 강하게 비판해 왔다.
그는 첫 임기 당시 해당 핵합의에서 미국을 탈퇴시키기도 했다.
이 때문에 대규모 현금 지원보다는 원유 수출을 통한 수익 창출 방식을 활용하는 것이 정치적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대안으로 분석됐다.
▲ 에너지 시장 안정 효과 기대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국제 에너지 시장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스라엘 국가안보연구소(INSS)의 시마 샤인 연구원은 원유 수출 허용이 이란에 실질적인 경제적 유인을 제공하면서도 글로벌 에너지 가격을 낮추는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이 이미 이란 항구 봉쇄를 해제하기로 한 상황에서 이란이 결국 원유 수출을 재개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차라리 이를 합법화해 관리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 동결자산 해제 여부가 최종 변수
현재 협상의 최대 쟁점 가운데 하나는 동결자산 접근 문제로 꼽혔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미국은 이란 중앙은행이 지정한 일부 용도에 한해 동결자산 사용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은 초기 합의 체결 시 120억 달러를 우선 지급받고, 이후 60일 협상 기간 동안 추가로 240억 달러를 확보하기를 희망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이란은 미국 제재로 인해 약 1,000억 달러 규모의 자산이 사실상 동결된 상태다.
이 자금 대부분은 중국을 비롯한 해외 금융기관에 보관돼 있으며, 카타르에 약 60억 달러, 오만에 약 10억 달러, 이라크 은행권에는 전력 및 천연가스 판매 대금 약 150억 달러가 예치된 것으로 추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