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유가 급락·공급 과잉…이란 협상력 약화 변수 부상

중동 긴장 완화 이후 국제유가가 전쟁 이전 수준으로 하락하고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원유 운송도 빠르게 정상화되고 있다.

걸프 산유국들도 감산했던 유전을 다시 가동하면서 글로벌 원유 공급은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되는 모습이다.

반면 세계 각국의 원유 비축량을 다시 채우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됐다.

시장에서는 비축유 회복 속도가 향후 미국과 이란의 협상 구도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 비축유가 협상력 좌우…미국 "시간이 우리 편"

최근 미국은 원유 비축량 확대가 대이란 협상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5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인터뷰에서 미국과 이란이 세계 각국이 원유 재고를 다시 확보할 시간을 벌 수 있도록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설명하며 "비축유를 다시 채운 뒤 협상 구도를 지켜볼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세계 원유 재고가 늘어날수록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통해 국제 에너지 시장을 압박할 수 있는 영향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판단을 반영한 발언으로 해석됐다.

▲ 세계 원유 재고는 30여 년 만에 최저 수준

현재 글로벌 원유 재고는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원유 재고는 올해 3월부터 5월까지 약 1억6천300만 배럴 감소하며 1990년 12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원유 저장시설은 정유시설 인근 상업용 저장탱크와 해상 유조선, 각국 정부가 운영하는 전략비축유로 구성된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재고를 정상 수준으로 회복하는 데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이란 핵문제 해결을 목표로 한 60일 협상 시한보다 훨씬 긴 기간이다.

▲ 공급 과잉 시작…유가 추가 하락 전망

시장에서는 공급 증가와 수요 둔화가 맞물리면서 국제유가가 추가 하락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JP모건은 원유 공급이 빠르게 늘어나는 반면 시장 수요는 이를 모두 흡수하지 못하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현재 배럴당 70달러 안팎인 국제유가는 향후 수개월 내 60달러 수준까지 하락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맥쿼리와 씨티그룹 역시 최근 비슷한 수준의 유가 하락 전망을 제시했다.

낮은 유가는 소비자와 항공업계에는 비용 부담을 줄여주는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됐다.

▲ 전략비축유 매입은 늦어질 전망

유가가 하락하더라도 각국 정부의 전략비축유 매입은 당장 시작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JP모건은 OECD 국가들이 올해 4분기부터 전략비축유를 본격적으로 다시 채우기 시작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은 2027년부터 하루 10만 배럴 수준으로 전략비축유를 매입한 뒤 하반기에는 하루 약 17만 배럴까지 매입 규모를 확대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는 공급이 충분한 상황에서도 정부가 시장 가격 안정을 고려해 비축유 매입 속도를 조절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Photo : [AP/연합뉴스 제공])

▲ 호르무즈 해협 운송 정상화…OPEC 증산도 본격화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 운송도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현재 하루 약 30~60척의 유조선이 해협을 통과하고 있으며, 전쟁 이전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글로벌 원유 공급 차질 우려는 상당 부분 완화됐다.

선박 분석업체 보텍사(Vortexa)에 따르면 6월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수출된 원유는 하루 평균 470만 배럴로 5월의 200만 배럴보다 크게 증가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 도 8월부터 하루 18만8천 배럴 증산에 합의했다. 다섯 달 연속 증산 결정으로 공급 확대 기조가 더욱 뚜렷해졌다.

▲ UAE·사우디 생산 확대…공급 회복 속도 빨라져

걸프 산유국들도 생산 정상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는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는 아부다비-푸자이라 송유관을 적극 활용하며 원유 수출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쿠웨이트 역시 예상보다 빠른 생산 회복세를 보였다. 최근 수출량은 하루 약 160만 배럴까지 증가했으며 전쟁 이전 수준인 240만 배럴에 점차 근접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도 홍해 송유관과 걸프 해상 운송을 병행하며 원유 공급 확대를 이어가고 있다.

▲ 미국·중국 비축유 회복은 더딜 가능성

공급은 회복되고 있지만 미국과 중국의 전략비축유는 아직 충분히 복원되지 않은 상태다.

미국 전략비축유(SPR)는 6월 말 기준 1983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까지 감소했다.

캐피털이코노믹스는 하루 20만 배럴씩 매입하더라도 전쟁 이전 수준까지 회복하는 데 최소 15~18개월이 걸릴 것으로 추산했다.

미국은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비축유를 대량 방출한 뒤에도 복원을 서두르지 않았다.

이후 약 30개월 동안 하루 평균 7만5천 배럴 수준만 매입했으며, 이란 사태 이전에도 재고는 여전히 과거 수준을 밑돌았다.

중국도 걸프 지역 공급 충격에 대응하기 위해 전략비축유를 사용했지만 현재까지 적극적인 재매입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6월 중국의 해상 원유 수입량은 하루 약 600만 배럴로 올해 평균보다 약 400만 배럴 적었다.

시장정보업체 스파르타커머디티스의 닐 크로스비는 "시장에서는 적대 행위가 사실상 끝났다고 판단하고 있지만, 이러한 상황이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확신하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다만 당분간은 공급 확대와 원유 재고 회복 기대가 시장을 지배하면서 유가 안정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우세했다.

저작권자 © 재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치/사회

글로벌

정치/사회

기업/산업

경제

국내 증시

부동산

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