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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문재인과 진보진영의 패배, 무엇이 원인일까?

[재경일보 사설] 제18대 대통령선거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가 승리했다. 투표율이 예상을 뛰어넘은 75.8%에 달해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유리할 것이라는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특히 충청과 강원에서 완패했고, 경기인천에서도 패배했으며, 서울에서도 원하는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번 패배에 대해 뭐라고 할 말이 없어지게 된 셈이다. 그만큼 진보 진영에게 이번 선거는 충격적이며 큰 타격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큰 벽에 부딪힌 느낌도 들 것이다. 앞으로 투표율이 높아진다고 해도 승리한다는 보장이 없어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결과는 사실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지난 4.11 총선에서도 보수는 예상을 깨고(?) 과반 이상의 의석을 차지하며 승리했다. 여기에서부터 진보 진영에서는 무엇인가를 깨달았어야 했다.

이번 선거의 패배는 민주당만의 패배가 아니라 단일화에 성공한 진보 진영의 실패다. 따라서 진보 진영은 왜 자신들이 패배했는지를 돌아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 선거에서도 승리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안철수 바람'도 안철수 전 대선 후보가 정치 개혁을 위해 나선 정치인이 아닌 진보 진영의 야권 인사로 스스로 자처하고 나서면서 사실상 찻잔 속의 태풍이 되고 말았다. 정치 신인 안 전 후보는 이제 사실상 자신의 이미지를 진보 성향, 야당 성향의 인사로 만들고 말았다. 안 전 후보가 문재인을 지지하고 나서고 이명박 정부에만 날을 세우기 시작한 순간부터 중심을 잃어버리고 만 셈이다. 많은 이들은 이명박 정부에 문제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 동의하지만, 진보 진영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턱대고 정권교체만 외치고 문재인 지지에 나선 것에 대해 상당수의 국민들은 동의하지 않은 셈이다. 야권 단일화 과정에서의 잡음도 단일화의 효과를 떨어뜨렸다. 이런 가운데 계속해서 정치를 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안 전 후보가 안철수 바람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서는 정치 개혁을 위해 합리적인 여야에 대한 비판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을 비롯한 진보 진영은 이명박 정부와 보수에 대한 심판에 나섰지만, 이는 보수와 진보의 정면 대결 양상으로 치달으며 보수가 더 결집하는 상황을 만들어줬다. 또 20~30대의 투표율을 높이는 데 목숨을 걸면서 이번 선거에서 최초로 유권자 비중이 20~30대보다 더 높아졌던 50대 이상 유권자들은 사실상 무시한 것도 실수였다. 이들에게는 북한과 안보 문제에 대한 보다 선명한 색깔을 보여줬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문 후보가 특전사 출신이라는 것으로 안보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킬 수는 없었다.

이번 선거 세대별 투표에서 박 당선인은 20~40대에서는 문 후보에 밀렸지만 50대 이상에서 크게 앞섰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20~40대에서도 30%에서 40% 가량이 보수 성향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수 세력은 호남 지역에서만 10% 수준이었을 뿐 다른 지역에서는 거의 과반에 가깝거나 이를 훨씬 상회하는 지지를 이끌어냈다. 이 같이 보수의 단단한 힘을 무시한 결과, 보수와 진보의 대결 양상으로 치달은 이번 선거에서 진보 진영은 패배하고 말았다. 진보 측이 자신의 세력을 과신하고 보수 세력을 무시한 결과 패배의 쓴 물을 삼키게 된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확인된 것은 '분단과 북한'이라는 상수가 존재하는 한국은 아직 진보 세력보다는 보수 세력이 많다는 것이다. 정당 지지율에서 보수측 정당은 거의 대부분 진보측 정당에 앞서왔었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서도 진보 진영에서 두 번이나 집권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보수 세력이라고 무조건 보수를 지지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번에 박 당선인에게 표를 던진 이들 가운데는 합리적 보수 세력과 중도 성향의 지지자들이 상당수였을 것이다. 이들은 문 후보보다 박 당선인이, 아니 진보보다는 보수가 지금 이 시대의 위기를 극복하기에 더 적합하다고 봤다. 진보 진영이 생각하는 것처럼 보수층은 모두 꼴통이 아니다.

그러나 진보 진영은 이번 대선을 맞아 단단한 지지층인 20~30대를 앞세워 인터넷 포털과 SNS 등에서 앞서 여론을 만들어내면서 보수를 사실상 '꼴통'을 몰았다. TV 토론 등을 통해서도 자신들의 후보가 승리했다고 떠들면서 박근혜 후보를 조롱하고 비웃는 데 온 힘을 할애했다. 또 박정희 대통령과 산업화 세력을 험한 말로 몰아세웠다. 공과 과에 대한 품위 있고 합리적인 비판과 평가를 하지 않아, 진보는 품위 없고 과격하다는 이미지를 심어줬다.

또 이명박 정부가 모든 면에서 잘 한 것은 아니지만 잘 한 점에 대해서도 인정해야 하는데, 진보 진영은 정권 교체를 외치면서 완전히 실패한 정부처럼 몰아세웠다. 선거 당일 한 청년이 이명박 대통령의 악수를 거부한 것이 무슨 자랑이나 되는 것처럼 글을 올린 것이 진보 진영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북한 문제, 통일 문제, 안보 문제다. 진보 진영은 보수측이 북한 문제에 대한 우려를 나타낼 때마다 낡아빠진 '빨갱이 논쟁'을 하지 말라고, 아직도 구시대적인 사고를 하고 있다며 보수측을 몰아세우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반도는 아직 휴전 상태라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은 여전히 호전적인 세력들이 남한에 대한 적화통일을 꿈꾸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양국의 국력 차이로 인해 그런 일이 결코 없을 것이라 해도 북한은 분명히 위협 국가다. 그러나 진보 세력은 이 문제에 대해 우리 정부의 편을 들기는커녕 북한의 대변인을 자처하고 있다.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에 성공했을 때도 북한을 비판하기 보다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이명박 정부와 보수를 비난하는데 더 열을 올렸다. 또 이정희 후보는 TV 토론에서 자신이 승리했다고 미소를 지었겠지만 많은 국민들에게는 박 당선인의 패배가 아닌 '남쪽 정부'라고 했던 이 후보의 그 한 마디가 더 뇌리에 남았다. 그리고 박 당선인을 표독하게 몰아세우는 그 모습에서도 기가 질리는 느낌을 받았을 수도 있다. 결국 TV토론은 진보 진영의 승리가 아니라 진보 진영이 자기 한계를 드러낸 뼈아픈 패배의 자리, 자기 폭로의 자리였다. 상당수 국민들은 이런 세력에게 나라를 맡긴다는 것은 불안하기짝이 없다고 판단했음이 이번 선거에서 드러났다. 이 후보가 중도 사퇴를 선언하며 문 후보 지지를 표명하지 않았지만 국민들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알고 있었다. 국민들이 그 정도 꼼수에 넘어가지 않는다. 또 애초부터 국가보조금을 노리고 나온 것이라는 사실도 부인하기는 힘들 것이다. 결국 문 후보측은 이 후보의 중도 사퇴를 막거나 애초부터 철저하게 선을 긋는 편이 더 나았을 지도 모른다.

북한 문제와 안보는 보수와 진보를 떠나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나 사회의 위기도 심각한 문제지만, 안보의 위기는 나라의 존립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더이상 진보 진영이 북한에 대한 우려를 '빨갱이' 논란으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진보 진영은 이 문제에 대한 논점을 회피하지 말고, 그들이 북한이 아닌 한국의 대변인이라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정확하게 심어줘야 한다.

물론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기에 평등을 강조하는 사회주의에 대한 희망도 가질 수는 있지만, 국민들은 좌파의 사회주의에 대해 우려하는 것이 아니라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체제로 이어지는 종북적 사고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것일 뿐이며, 진보측이 북한에 퍼주기를 하며 북한 체제를 공고하게 하는 데 이용당할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올바른 문제 제기이기에 진보 진영 측에서도 이에 대해 검토하고 수용할 것은 수용하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국민들 모두 보수와 진보의 성향으로 나눠지기는 하겠지만, 나라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는 예외가 없다. 국민들은 보수와 진보를 떠나 이들 세력이 나라를 잘 되게 할 것이라는 믿음이 간다면, 언제든지 그들을 밀어줄 의지가 있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이, 진보 진영이 다음 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결론적으로 두 가지가 필요하다.

먼저 보수 진영에 대한 마구잡이식의 공격이나 비난이 아닌 합리적이면서도 품위 있는 비판을 해야 한다. (물론 이것은 보수 진영에서도 마찬가지다.) 권력에 대해 욕심을 부리며 상대방을 비방하는 데 힘을 쓰지 말고, 더 똑똑하고 잘났다는 인식을 주려고 하지 말고, 선거에서 패배한 후 자신의 패배를 깨끗이 승복하고 박 당선인의 승리를 축하해준 문 후보와 같은 품격을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종북좌파'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켜줘야 한다. 이 문제를 더 이상 색깔론으로 몰아붙이지 말고 철저한 자기 반성을 통해 이들 세력 정리에 앞장서야 한다. 이것에 있어서 분명한 입장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통일이 되기 전까지 진보는 매 선거마다 이 패러다임에 함몰돼 승리가 쉽지 않아질 것이다. 특히 고령화 사회로 인해 50대 이상의 유권자들이 더 많아질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에 대한 어정쩡한 자세는 항상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한 우려를 표하는 이들을 꼴통으로 몰기만 한다면, 진보측도 스스로 자기 모순과 한계를 드러내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또 인터넷과 SNS의 여론이 전부가 아니다. 인터넷 댓글을 달지 않고 트윗을 날리지 않으면서 나라를 걱정의 눈으로 바라보는 국민들은 더 많을 지도 모른다. 똑똑한 국민들, 전쟁의 폐허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뤄내 선진국의 문턱까지 단숨에 치고 올라온 저력 있는 국민들은 보수나 진보 진영의 선동이나 조작에 넘어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