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20일 부동산 공시가격 급등에 따른 각종 세부담을 완화해 주기로 하면서 관계부처가 세부 방안 마련에 착수했다.
공시가격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일단 당정이 문제의 발단인 공시가격 현실화율 자체는 손대지 않겠다고 선을 그은 만큼 일단 올해 부동산 가격 상승분을 반영한 내년도 공시가격은 예정대로 발표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여당의 세금 관련 정책 후퇴 발언으로 인해 가뜩이나 얼어붙어 있는 주택 시장의 거래 절벽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공시가격 역대급 상승 예고…국토부 "발표는 예정대로"
국토부 관계자는 "오늘 당정협의에서 공시가격 현실화율은 건드리지 않기로 한 만큼 예정대로 내년도 공시가격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토부는 가장 먼저 23일 표준 단독주택 23만여가구 공시가격 예정가 열람을 시작으로 내년도(1월 1일자) 부동산 공시가격을 속속 공개한다.
이어 3월부터 공동주택 공시가격과 개별 단독주택 공시가격, 토지 공시지가 등을 차례로 발표한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와 여당이 이날 정부에 보유세 인하 방안 마련을 주문한 것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역대급 공시가격 상승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공시가격은 재산세·종부세 등 보유세는 물론 건강보험료, 기초수급 대상자 선정 등 60여가지 행정목적으로 활용돼 사회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미친다.
당장 금주에 공개되는 단독주택의 경우 올해 집값이 크게 뛴 데다 현실화율(시세 대비 공시가격 비율)까지 상향 조정되면서 올해 집값 상승분을 뛰어넘는 큰 폭의 상승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11월까지 단독주택 매매가 상승률은 전국 2.90%, 서울이 4.36%로 이미 작년(2.50%, 4.16%) 상승률을 넘어섰다.
여기에 공시가격 로드맵상 내년도 현실화율은 평균 58.1%로 올해 현실화율(55.8%)보다 평균 2.3%포인트(p) 상향된다.
국토부는 연초에 발표한 올해 표준 단독주택 공시가격이 전년 대비 전국이 6.68%, 서울이 10.13%가 올랐는데 내년 공시가격도 비슷한 수준의 상승폭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 3월 공개될 아파트·연립·빌라 등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올해보다 더 큰 폭의 '역대급' 상승이 예고돼 있다. 올해 11월까지 전국의 아파트값은 13.73% 뛰어 작년 한 해 상승률(7.57%)을 크게 웃돌고 있다.
특히 서울(7.76%)은 물론 경기(22.09%)·인천(23.87%)과 부산(14.02%)·대전(14.44%) 등 지방 광역시 아파트값까지 급등하면서 수도권에 이어 지방의 공시가격도 큰 폭으로 뛸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내년도 서울, 수도권 아파트 공시가격은 20∼30% 상승을 각오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구체적 방안 3월에나 나올 듯…전문가 "내년 세금 줄어도 내후년은 세금 폭탄"
당정이 이날부터 보유세 인하 방안 마련에 착수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내년 3월께나 돼야 나올 전망이다.
내년도 공시가격이 발표되는 물리적 시간에 더해 기재부, 행안부, 국토부, 복지부 등 여러 관계 부처에서 그에 따른 파장 등을 분석하는 데 추가 시간이 걸리고 필요할 경우 관련 법 개정도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지금은 제로베이스에서 관계부처들이 함께 여러 대안을 검토해보자는 단계"라며 "내년 1, 2월은 돼야 공동주택 관련 통계가 나오니 효과 분석 등을 거쳐 내년 3월 공동주택 공시가격 발표 전에 세부안이 확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3월 초 대선을 앞둔 상황이어서 당정이 세부 방향성만큼은 앞당겨 공개할 가능성도 크다.
여당이 밝힌 대로 보유세를 동결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올해 공시가격을 내년도 세금에 적용하면서 세금이 전년도 수준을 넘지 않게 세부담 상한을 100%로 제한하는 것이다.
현재 재산세 세부담 상한은 전년도 세액의 105∼130%, 종부세는 재산세와 종부세를 합친 세액이 1주택자의 경우 150%, 다주택자는 300%를 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이를 모두 100%로 맞추면 보유세가 동결되는 효과가 있는 셈이다.
공정시장가액비율을 조정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것만으론 한계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종부세 공정시장가액비율의 경우 올해 95%, 내년에는 100%로 상향조정되는데 만약 내년도 종부세를 95%로 동결한다고 가정해도 올해 세부담 상한에 걸려 보유세를 덜 낸 사람은 올해와 동일한 공시가격 조건 하에서도 세금 이연효과로 인해 내년 보유세가 증가하게 된다.
신한은행 우병탁 부동산팀장은 "올해 공시가격이 급등하면서 고가주택이나 다주택자들은 세부담 상한에 걸린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공시가격과 공정시장가액비율이 동결돼도 내년에 보유세가 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세부담 상한 조절이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대선 정국에서 내년 보유세를 올해 수준으로 동결한다고 하더라도, 내년 이후 보유세는 더 급등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미 내년도 공시가격 급등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내년에도 집값이 계속 뛴다면 2023년에는 2년 연속 상승한 공시가격으로 보유세를 납부해야 하는, 말 그대로 '세금폭탄'을 맞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여기에다 정부 공시가격 로드맵상 현실화율은 매년 상향 조정된다. 그해 집값이 안 오르거나 일부 떨어지더라도 현실화율 상향에 따라 공시가격은 오를 수 있다.
김종필 세무사는 "내년에 세금을 깎아주더라도 2년치 누적된 공시가격을 내후년 보유세에 반영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없다"며 "일단 내년에만 세금을 낮춰준다면 내후년의 급등한 보유세와 이로 인한 불만은 어떻게 잠재울 것인지에 대한 해결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전문가 "현실화율 속도 조절 검토해야"
당정이 보유세 동결 협의에 나서면서 일단 부동산 시장의 관망세는 더욱 짙어질 전망이다.
서울 아파트 등 수도권 주택시장은 여야 대선 후보들의 경쟁적인 양도세·보유세 인하 공약으로 인해 매수세는 물론 매도자들도 일제히 관망세로 돌아서면서 이미 거래 절벽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일시적 2주택자나 자금 사정이 급한 경우만 급매물로 일부 나오고, 그 외 다주택자들은 매물을 회수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국민은행 박원갑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보유세 부담이 예상보다 줄어들면 매도 압박도 감소할 수밖에 없다"며 "현재 다주택자에 대한 한시적 양도세 감면 논의로 매도자들이 관망세로 돌아섰는데 보유세 완화 논의까지 겹쳐 앞으로 거래절벽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여당이 다주택자 양도세 한시 감면을 주장하는 상황에서 보유세까지 같이 동결할 경우 양도세 감면에 따른 매물 증가와 가격 인하 효과가 퇴색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직방 함영진 빅데이터랩장는 "최근 시장에 나오는 물건은 매도 시점이 정해진 일시적 2주택자이거나 개인 사정상 꼭 팔아야 하는 급매물들이 대부분인데 이런 것들을 제외하고는 한동안 매도를 유예할 가능성이 크다"며 "거래 공백이 대선 때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참에 공시가격 현실화율 속도 조절 등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선거용 땜질식 처방으로는 보유세 불만을 잠재울 수 없다는 것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공시가격은 보유세뿐만 아니라 건보료 등 다양한 정책 수단으로 활용되는 중요한 지표"라며 "대선을 앞두고 임시 조치에 끝날 것이 아니라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 자체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병탁 부동산팀장은 "국민들의 세부담이 완만하게 늘어나도록 하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