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에너지 쇼크에도 버티는 세계 경제…효율성·AI 완충제 역할

장선희 기자

1970년대 이후 가장 심각한 에너지 쇼크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경제가 예상보다 강한 회복력을 보이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매일 1,300만 배럴의 원유 공급이 차단되고 브렌트유 가격이 50% 이상 폭등했지만, 주요국 경제는 과거 에너지 위기 때와 달리 급격한 침체를 피하며 선전하고 있다.

▲ 에너지 효율 개선과 AI 붐의 강력한 방어력

글로벌 경제가 전례 없는 공급 충격을 견뎌내는 배경에는 과거와 달라진 에너지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세계은행 데이터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인플레이션을 조정한 GDP 1달러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 소비량은 미국과 유럽에서 약 3분의 1, 중국에서는 약 40% 감소했다.

이러한 에너지 효율성 개선은 공급 중단으로 인한 충격을 완화하는 핵심 쿠션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에 인공지능(AI) 붐이 또 다른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3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데이터 센터 구축을 위한 칩과 전자제품, 기계류 수요가 폭증하면서 아시아 주요 수출국들의 실적을 떠받치고 있다.

지난 3월 일본의 수출은 전년 대비 12% 늘었으며, 한국과 대만은 각각 50%와 68%라는 경이적인 수출 증가율을 기록했다. AI가 에너지 쇼크로 인한 경제적 균열을 메우고 있는 셈이다.

▲ 탄탄한 비축유와 안정적인 물가 시작점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와 비교해 현재의 경제 여건이 상대적으로 양호하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2022년에는 팬데믹 이후 억눌렸던 수요가 폭발하며 이미 물가가 급등하던 시기였으나, 이번 위기는 상대적으로 물가가 안정된 상태에서 시작됐다.

덕분에 각국 중앙은행은 급격한 금리 인상 압박에서 다소 자유로운 상태로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각국이 그간 준비해온 에너지 비축량도 큰 힘이 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은 약 200일 치, 유럽은 130일 치의 비축유를 확보하고 있다.

중국 역시 약 100일간 경제를 가동할 수 있는 14억 배럴 규모의 막대한 비축량을 보유해 당장의 물리적 공급 부족에 대비하고 있다.

호르무즈
[로이터/연합뉴스 제공]

▲ 고효율 산업으로의 구조적 전환과 신재생 에너지의 역할

세계 경제가 체질 개선에 성공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선진국들이 제조업 중심에서 금융, 보건의료 등 에너지 집약도가 낮은 서비스업으로 산업 구조를 개편한 것이 주효했다.

또한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는 화석 연료에 비해 열 손실이 적어 전체적인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기업들의 기술적 혁신도 돋보인다.

독일의 티센크루프는 폐열 회수와 설비 교체로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했으며, 프랑스의 생고뱅은 AI를 활용해 유리 용해로의 에너지 소비를 실시간으로 조절하고 있다.

IMF 모델링에 따르면 이러한 기업들의 에너지 절감 노력은 위기로 인한 장기적인 경제 피해를 약 3분의 1 수준으로 줄여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호르무즈 해협
[로이터/연합뉴스 제공]

▲ 장기화에 따른 경기 침체 우려는 여전

물론 낙관론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내년까지 이어질 경우 2026년 세계 경제 성장률이 2%대까지 추락하며 경기 침체에 진입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비축 자금이 부족하고 AI 붐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저개발국들은 이미 공장 폐쇄와 예산 부족으로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다.

전문가들은 팬데믹부터 전쟁, 관세 전쟁에 이르는 연쇄적인 충격이 누적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세계은행은 개도국들이 당장의 구제책 마련과 미래 성장을 위한 투자 사이에서 가혹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고 지적했다.
호르무즈 해협의 재개방 여부와 중동의 지정학적 긴장 해소는 세계 경제가 이 '회복력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을지를 결정할 최종 관문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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