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헌법에서 ‘조국통일’ 개념을 삭제하고 북측 영토만을 규정하는 조항을 신설하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주장해온 ‘두 국가 체제’를 사실상 헌법에 공식 반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개헌은 단순한 문구 수정 수준을 넘어 남북 관계를 민족 내부 문제에서 국가 대 국가 관계로 전환하려는 전략적 방향성을 명확히 드러낸 조치로 평가된다.
6일 통일부 기자단 간담회에서 공개된 북한 개정 헌법 전문에 따르면 기존 헌법에 포함됐던 ‘북반부’, ‘조국통일’, ‘민족대단결’,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 등의 표현이 모두 삭제됐다.
이는 북한이 오랫동안 유지해온 통일 담론과 민족 공동체 개념을 사실상 폐기한 것으로 해석된다.
▲ ‘적대적 두 국가’ 노선 헌법 반영
이번 개헌의 핵심은 영토 조항 신설이다.
북한은 새 헌법 제2조에서 자국 영토를 “북쪽으로 중국과 러시아, 남쪽으로 대한민국과 접하고 있는 영토”라고 규정했다.
이는 북한 헌법상 처음으로 대한민국을 별개의 국가로 전제한 표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미 2023년 말 남북 관계를 “적대적인 두 개 국가 관계”로 규정한 바 있다. 이번 개헌은 그 정치 노선을 제도적으로 고착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남북 간 해상 경계선이나 군사분계선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포함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북한이 향후 군사·외교적 협상 여지를 완전히 차단하지 않으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 ‘적대국’ 표현은 제외…여지 남긴 북한
주목할 부분은 북한이 한국을 헌법상 ‘적대국’으로 명시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최고인민회의에서 대한민국을 “제1의 적대국”으로 규정하는 조항 삽입 필요성을 직접 언급했지만, 실제 개헌안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또 기존 헌법에 있던 ‘제국주의 침략자’, ‘적대분자’, ‘파괴책동’ 등 강경 표현들도 상당수 삭제됐다.
이는 대외적으로는 정상국가 이미지를 강화하면서도, 남북 관계를 완전한 교전 상태로 규정하는 것은 피하려는 전략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서울대 이정철 교수는 “적대국 표현이 빠졌다는 점은 북한 역시 불필요한 분쟁 구조를 제도화하는 데 부담을 느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 김정은 권한 강화…‘국가수반’ 공식화
이번 개헌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의 권한과 위상 강화도 두드러졌다.
북한은 헌법에서 국무위원장을 ‘국가수반’으로 공식 규정했고, 국가기관 배열 순서에서도 최고인민회의보다 앞세웠다.
북한 헌법 체계상 최고지도자가 입법기관보다 우위에 배치된 것은 처음이다.
이는 사실상 김정은 1인 지배체제를 헌법적으로 명문화한 조치로 평가된다.
특히 국무위원장의 핵무력 지휘권이 처음으로 헌법에 명시됐고, 그 권한 위임 근거까지 신설됐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제도적으로 더욱 공고히 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 최고인민회의 견제 기능도 약화
헌법 개정 과정에서는 최고인민회의의 형식적 견제 기능도 약화됐다.
기존 헌법에 존재했던 국무위원장 소환권이 삭제됐고, 최고인민회의 의장과 내각 총리에 대한 임면권 역시 국무위원장 권한으로 명시됐다.
이는 북한 권력 구조가 사실상 김정은 중심의 초집중 체제로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치권에서는 북한이 외형상 국가체제를 강조하면서도 실제로는 최고지도자 권력 집중을 더욱 강화하는 이중적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사회주의 복지 표현도 대거 삭제
북한 헌법에서 사회주의 체제 우월성을 상징하던 표현들도 상당수 사라졌다.
‘무상치료’, ‘세금 없는 나라’, ‘실업을 모르는 사회’ 등 현실과 괴리가 큰 조항들이 삭제됐다.
이는 경제난 장기화 속에서 현실성이 떨어지는 선전 문구를 정리하고 체제 신뢰도 관리에 나선 조치라는 해석이 제기된다.
대신 북한은 ‘해외군사작전 참전열사’ 조항을 새로 추가했다.
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북한군 지원 가능성 및 러시아와의 군사협력 강화를 염두에 둔 조치로 읽힌다.
▲ “정상국가 이미지 강화 의도”
전문가들은 이번 북한 헌법 개정을 ‘국가 정상화 전략’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통일·혁명 중심 국가에서 독립된 주권국가 이미지를 강화하고, 국제사회에서 핵보유 국가로서의 지위를 제도화하려는 의도가 담겼다는 분석이다.
특히 민족·혁명 중심 표현을 줄이고 국가성·영토성 개념을 강화한 점은 중국식 국가 체제 모델과 유사한 방향성을 띠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일각에서는 남북관계를 완전히 단절하기보다 ‘평화 공존 가능한 두 국가 체제’로 관리하려는 북한의 전략 변화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이정철 교수는 “적대 관계를 명문화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향후 남북 평화 공존의 제도적 기반으로도 해석할 여지가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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