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10.18%, 7.68% 급락하며 국내 증시가 큰 폭으로 조정받았으나, 전문가들은 이를 인공지능(AI) 투자 사이클의 종료가 아닌 단기 기대치 조정에 따른 저가 매수 기회로 분석하고 있다. 코스피는 8.29% 하락한 7,484.41로 장을 마감하며 심리적 지지선인 8,000선을 내줬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동반 폭락하며 코스피 8,000선이 붕괴되는 등 국내 반도체 시장이 극심한 변동성을 노출했다. 삼성전자는 전 거래일 대비 10.18% 하락한 29만 5,500원에 거래를 마치며 6거래일 만에 소위 '30만전자' 선을 하회했다. SK하이닉스 역시 7.68% 내린 191만 1,000원을 기록하며 종가 기준 200만 원 선 아래로 밀려났다. 이 기간 코스피 지수는 676.18포인트 급락한 7,484.41로 장을 마감하며 시장의 공포 심리를 고스란히 반영했다.
이번 급락은 미국발 악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반도체 업황에 대한 불확실성을 키운 결과로 풀이된다. 미국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의 실적 발표에서 제시된 AI 반도체 매출 전망이 시장의 높은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한 점이 조정의 단초가 됐다. 여기에 미국 고용지표 호조로 인한 금리 인상 우려가 확산되면서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가 10.26% 폭락한 것이 국내 증시에 직격탄을 날렸다. 외국인과 기관의 차익 실현 매물이 쏟아지며 주가 하락 압력을 가중시킨 것으로 보인다.
증권가에서는 최근의 하락세를 업황의 근본적인 붕괴보다는 가파른 상승에 따른 피로감 해소 과정으로 정의하고 있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최근 미국 반도체주 폭락은 메모리 업사이클 피크아웃이나 AI 수요 둔화 등 업황 악재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는 주가 폭등 및 쏠림 현상 심화에 따른 수급 부담이 누적된 상황에서 금리 상승이 조정의 명분을 제공했다고 분석했다. 이는 시장 질서 내에서의 자연스러운 가격 조정 과정이라는 시각이다.
AI 산업의 핵심 동력인 데이터센터 수요는 여전히 견조하다는 데이터가 전문가들의 낙관론을 뒷받침한다. 김지현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5월 고용보고서 중 비주거용 전문건설업 부문의 고용 증가에 주목하며 데이터센터 건설이 차별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고 짚었다. 전기공 비중이 높은 해당 수치의 증가는 AI 투자가 여전히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방증하는 지표로 해석된다. 실질적인 인프라 구축 수요가 꺾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현대차증권 등 주요 증권사들은 반도체 중심 대형 성장주의 단기 변동성 확대에도 불구하고 중장기 성장성은 훼손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김중원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HBM4 공급망 구축과 차세대 고성능 GPU 출하 기대가 유지되고 있어 AI 투자 사이클 종료보다 단기 기대치 조정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그는 대형 반도체 성장주의 자기자본이익률(ROE) 개선과 주가수익비율(PER) 할인 전환이 동시에 확인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로 SK증권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목표주가를 각각 61만 원과 400만 원으로 유지하며 매수 의견을 고수했다. 한동희 SK증권 연구원은 "AI 시대 메모리의 구조적 병목과 메모리 업체들의 실적 강세는 단기에 변하는 가치가 아니다"라며 현재의 조정을 매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는 반도체 업황이 정점을 찍고 하락한다는 '피크아웃' 우려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보수적 시장 가치 평가에 기반한다.
엔비디아를 이끄는 젠슨 황 CEO 역시 한국을 방문해 AI 산업의 미래에 대해 강력한 확신을 피력했다. 그는 SK그룹과의 브리핑에서 "전 세계적으로 더 많은 AI 팩토리를 원하는 엄청난 수요를 목격하고 있으며 사업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언급했다. 황 CEO는 우리가 이제 막 AI 인프라 구축의 시작 단계에 있으며 미래는 대단히 밝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특히 현재의 주가 조정 시기를 주식을 저렴하게 매수할 수 있는 시기로 규정하며 시장의 불안을 불식시켰다.
전문가들은 젠슨 황 CEO의 방한이 한국 반도체 기업들과의 협력 범위를 로보틱스와 소프트웨어 등 AI 인프라 전반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상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이번 방문이 엔비디아 생태계와 한국의 협력을 상징하는 이벤트라고 평가하며 실적주의 매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AI 투자 확대의 수혜가 실제 재무제표상의 실적으로 연결되는 기업들에 대한 선별적 접근이 유효하다는 분석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인플레이션 우려가 재점화될 경우 주가 변동성이 당분간 지속될 수 있다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시장 예상치를 웃돌 경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매파적 기조가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지현 연구원은 반도체 고밸류에이션 부담과 유가 상승 우려가 누적된 상황에서 6월과 7월은 변동성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는 시장의 효율성을 저해할 수 있는 거시경제적 변수를 경계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향후 국내 증시는 오라클의 실적 발표와 스페이스X의 상장 등 굵직한 글로벌 이벤트의 영향권에 놓일 전망이다. 특히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업공개(IPO)로 꼽히는 스페이스X 상장은 국내 증시의 수급 교란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김종민 삼성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투자자들이 스페이스X 투자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기존 포지션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한국 반도체 주도주에 대한 매도 압력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결론적으로 현재의 반도체주 급락은 AI 산업의 본질적인 퇴보가 아닌 거시경제 지표와 수급 불균형이 초래한 일시적 현상으로 귀결된다. 투자자들은 단기적인 가격 변동에 일희일비하기보다 기업의 펀더멘털과 실적 개선 여부에 집중하는 보수적인 투자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AI 인프라 구축이라는 거대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반도체 섹터의 지배력은 당분간 유지될 가능성이 높으며, 철저한 팩트 기반의 시장 대응이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