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인공지능(AI) 기업 앤트로픽(Anthropic)이 자사 최신 AI 모델에 대한 미국 정부의 수출 제한 조치를 해제하기 위해 백악관 및 정부 관계자들과 긴급 협상에 나섰다.
14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회사 핵심 기술진까지 워싱턴으로 급파되면서 미국 정부와 AI 업계 간 규제 갈등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이번 사태는 트럼프 행정부가 앤트로픽의 최신 AI 모델인 '페이블(Fable) 5'와 '미토스(Mythos) 5'의 해외 사용을 전격 제한하면서 촉발됐다.
앤트로픽은 규정을 준수하기 위해 해당 모델에 대한 모든 접근을 중단했으며, 이에 따라 글로벌 기업과 연구기관, 해외 국적 직원들까지 영향을 받게 됐다.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가 단순한 수출 통제를 넘어 미국 정부가 첨단 AI 기술의 활용 범위를 직접 통제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하고 있다.
▲ AI 수출 규제 둘러싼 정부·기업 충돌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13일(현지시간) 외국 정부와 기업, 개인을 대상으로 페이블 5와 미토스 5 모델 사용을 금지했다.
이후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과 숀 케언크로스 국가사이버국장, 앤트로픽 공동창업자인 톰 브라운 최고컴퓨팅책임자(CCO), 사라 헥 공공정책 총괄 등이 수시간에 걸쳐 긴급 협상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은 특히 일반 사용자용 모델인 페이블 5의 보안성과 위험 수준을 집중적으로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관계자들과 업계 소식통들은 양측 모두 규제 해제와 모델 서비스 정상화를 원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타협 방안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 아마존 연구 결과가 규제 촉발
이번 갈등의 직접적인 계기는 아마존 연구진이 발표한 보안 테스트 결과였다.
아마존 연구진은 페이블 5의 일부 안전장치를 우회할 수 있으며, 질문 방식을 변경하는 것만으로 여러 소프트웨어의 보안 취약점 정보를 추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백악관은 해당 결과를 보고받은 직후 긴급 회의를 열고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이후 앤디 재시 아마존 최고경영자(CEO)가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등 정부 관계자들과 직접 접촉했고, 트럼프 대통령도 보고를 받은 뒤 규제 조치를 승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보안 전문가들은 연구 결과가 해킹 공격용 프로그램이나 실제 사이버 공격 도구를 생성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오히려 보안 취약점 탐지는 사이버 방어와 보안 점검을 위해 필요한 기능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 "국가안보 위해서라도 규제 완화해야"
미국 사이버보안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과도하게 대응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16일에는 다수의 보안 전문가들이 공동 서한을 발표하며 수출 제한 철회를 촉구했다.
이들은 "이번 조치는 사이버 방어를 위한 최고 수준의 AI 모델 접근을 차단했고 시장 불확실성을 키웠으며 미국 AI 경쟁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사이버보안 기업 루타 시큐리티(Luta Security)의 케이티 무수리스 CEO 역시 "최신 미토스 모델에 대한 접근 차단은 오히려 국가안보와 사이버 방어 역량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는 AI가 공격 수단인 동시에 방어 도구라는 점에서 일률적인 규제가 오히려 미국의 보안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앤트로픽[로이터/연합뉴스 제공]
▲ 앤트로픽, 핵심 연구진 워싱턴 급파
앤트로픽은 갈등 해소를 위해 최고 수준의 기술 전문가들을 워싱턴으로 파견했다.
이번 협상에는 보안 연구 분야의 핵심 인물인 니컬러스 칼리니 연구원을 비롯해 모델 위험성 평가를 총괄하는 로건 그레이엄, 안전장치 개발 책임자인 데이브 오어 등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정부 보안 전문가들과 직접 만나 모델의 안전성 검증과 위험 평가를 진행할 예정이다.
행정부 내부에서도 기술 전문가 간 직접 협의가 문제 해결을 위한 핵심 단계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 AI 규제 주도권 경쟁 본격화
이번 사태는 미국 정부와 주요 AI 기업 간 갈등이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정책 주도권 경쟁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앤트로픽은 업계에서도 안전성 확보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기업 중 하나로 평가받아 왔다. 회사는 미토스 모델 출시 과정에서도 백악관과 협력하며 금융·의료·기업 보안 분야에서 소프트웨어 취약점 탐지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AI 산업 전반에 대한 통제 수위를 높이며 기술 발전 속도보다 국가안보 위험 관리에 무게를 두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국방과 사이버안보, 첨단기술 패권 경쟁이 맞물리면서 AI 모델 자체가 전략 자산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 IPO 앞둔 앤트로픽, 중대 시험대 직면
올가을 기업공개(IPO)를 추진 중인 앤트로픽 입장에서는 이번 사태가 중대한 시험대로 떠오르고 있다.
회사는 그동안 미국 국방부와 AI 활용 범위 및 안전장치를 둘러싸고 지속적인 이견을 보여왔으며, 이번 수출 규제는 그 갈등이 표면화된 사례로 평가된다.
시장에서는 이번 협상이 단순히 페이블 5와 미토스 5 서비스 재개 여부를 넘어 향후 미국 AI 기업들이 정부 규제와 어떤 관계를 구축하게 될지를 가늠하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