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글로벌 디지털 결제 시장을 대표하며 시가총액 3,600억 달러(약 532조 5120억원)를 기록했던 페이팔(PayPal)이 이제는 경쟁사로부터 인수 제안을 받는 처지에 놓였다.
20일(현지 시각)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애플페이(Apple Pay)의 급성장과 AI 경쟁력 부족, 성장 정체가 겹치면서 페이팔의 기업가치가 크게 하락한 가운데, 시장에서는 이번 인수 제안이 회사의 향후 운명을 가를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 스트라이프·어드벤트, 530억 달러 인수 제안
페이팔은 최근 디지털 결제 기업 스트라이프(Stripe)와 사모펀드 어드벤트 인터내셔널으로부터 약 530억 달러(약 78조 3870억원) 규모의 비상장 전환(테이크 프라이빗) 인수 제안을 받았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페이팔 이사회는 해당 제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주당 60.50달러의 제시 가격은 회사의 가치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사회는 관련 논의를 위해 회의를 열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 전자상거래 개척 기업의 위상 변화
페이팔은 1998년 설립돼 이메일 기반 결제와 전자상거래 결제 시장을 개척한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일론 머스크와 피터 틸 등 실리콘밸리 거물들의 초기 경력을 만든 기업으로도 유명하다.
회사는 2002년 이베이(eBay)에 인수됐으며, 2015년 다시 독립 기업으로 분사했다.
이후 모바일 결제 시장 성장과 함께 기업가치는 2021년 약 3,600억 달러까지 치솟으며 월가의 대표 성장주로 자리 잡았다.
▲ 성장 둔화와 경쟁 심화가 기업가치 흔들어
그러나 이후 성장세가 둔화되고 경쟁이 급격히 심화되면서 페이팔의 위상은 크게 약화됐다.
회사는 최근 수년간 다양한 성장 전략을 추진했지만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페이팔 전체를 유지하는 것이 더 유리한지, 아니면 벤모(Venmo)와 같은 핵심 사업을 개별 매각하는 것이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까지 나오고 있다.
▲ 새 CEO 체제 출범…경쟁력 회복 과제
페이팔은 올해 새로운 최고경영자(CEO)를 선임하면서 경쟁사 대비 입지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회사 측은 "지난 2년 동안 일부 진전은 있었지만 변화의 속도와 실행력은 이사회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밝혔다.
지난 3월 취임한 엔리케 로레스 CEO는 현재까지 회사 매각 가능성에 대해서는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 애플페이에 주도권 내주며 입지 약화
시장에서는 페이팔이 모바일 결제 시장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애플과 구글, 삼성은 물론 스트라이프와 어펌(Affirm) 등 신생 핀테크 기업들이 새로운 결제 서비스를 잇달아 출시하는 동안 페이팔은 디지털 은행이나 모바일 중심 금융 서비스 확대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다.
미즈호의 댄 돌레브 애널리스트는 "세계 최대 결제 버튼이라는 기존 성공 모델에 지나치게 안주했다"고 평가했다.
▲ 애플페이 시장점유율 역전
시장조사업체 PYMNTS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결제 시장에서 애플페이의 점유율은 페이팔을 약 10%포인트 앞질렀다.
스마트폰 결제가 일상화되는 과정에서 페이팔이 모바일 중심 생태계 구축에 뒤처졌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 AI·에이전틱 커머스 대응도 늦어
페이팔은 AI 기술 도입에서도 경쟁사보다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AI가 소비자를 대신해 상품을 검색하고 가격을 협상한 뒤 구매까지 수행하는 '에이전틱 커머스(Agentic Commerce)' 분야에서 뚜렷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했다.
AI 기반 결제 생태계가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부상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대응 지연은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 시장점유율 확대에 치중…수익성은 악화
뉴욕 금융회사 클리어스트리트(Clear Street)의 오언 라우 애널리스트는 페이팔이 시장점유율 확대를 위해 지나치게 낮은 수수료 정책을 유지했다고 평가했다.
그 결과 고객은 확보했지만 충분한 수익성을 창출하지 못했고, 기존 사업의 성장세도 둔화됐다는 분석이다.
벤모 역시 성장세가 둔화됐으며, '선구매 후결제(BNPL)' 등 신규 사업도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됐다.
현재는 이용자 수 증가보다 기존 고객당 수익성을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한 과제가 됐다고 분석했다.
▲ 4년간 CEO 3명 교체…경영 불안 지속
페이팔은 최근 4년 동안 최고경영자가 세 차례 교체될 정도로 경영 안정성이 흔들렸다.
장기 CEO였던 댄 슐먼이 2023년 물러난 이후 회사는 두 번째 대규모 경영 정상화 작업에 착수했다.
시장에서는 잦은 경영진 교체가 장기 전략 수립과 실행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됐다고 평가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제공] [로이터/연합뉴스 제공]](https://images.jkn.co.kr/data/images/full/102/06/1020697.jpg?width=1200)
[로이터/연합뉴스 제공]
▲ 오픈AI 협업도 내부 갈등으로 무산
지난해에는 페이팔 디지털 지갑과 결제 시스템을 챗GPT(ChatGPT)에 연동하는 오픈AI와의 협력 논의가 내부 갈등으로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사회와 알렉스 크리스 CEO가 이끄는 경영진 사이에 의견 충돌이 발생했고, 이사회가 협상 연기를 요구한 이후 크리스 CEO는 결국 회사를 떠났다.
시장에서는 AI 생태계 진입 기회를 놓친 사례로 평가하고 있다.
▲ 이사회 "530억 달러는 부족"…인수가 인상 가능성
복수의 관계자들은 페이팔 이사회가 현재 제시된 530억 달러 규모의 인수 가격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전했다.
일부 이사들은 협상을 시작할 만큼 충분한 제안인지 여부 자체를 두고도 의견을 나누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사회는 현재 추진 중인 경영 정상화 계획이 성공할 경우 기업가치가 더 높아질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 시장 "추가 인상 여력 충분"
월가에서는 스트라이프와 어드벤트가 인수 가격을 추가로 높일 여력이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두 회사는 약 170억 달러의 자기자본과 500억 달러 규모의 인수금융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향후 페이팔의 실적 발표 결과에 따라 인수 가격이 상향 조정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실적이 부진하면 페이팔의 협상력이 약화될 수 있지만, 예상보다 양호한 실적이 나올 경우 더 높은 인수 가격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 대항 인수전 가능성은 낮아
시장에서는 다른 기업이 페이팔 인수전에 뛰어들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이번 스트라이프·어드벤트 연합의 제안이 페이팔의 기업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모바일 지갑 시장의 경쟁 심화와 성숙 단계에 접어든 고객 기반을 고려할 때 페이팔이 독자적으로 과거의 성장세를 회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