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의 막대한 원유 수출이 사실상 하나의 좁은 해상 통로에 점점 더 의존하는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이란과의 전쟁 이후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기 위해 홍해 항로를 적극 활용해왔지만, 최근 후티 반군의 공격이 격화되면서 이마저도 위협받고 있다. 이에 따라 사우디 원유는 수에즈운하와 아프리카 희망봉을 경유하는 더욱 길고 비용이 많이 드는 운송 경로로 내몰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 홍해 우회 전략 흔들리는 사우디 원유 수출
사우디아라비아의 막대한 원유 수출이 사실상 하나의 좁은 해상 통로에 점점 더 의존하는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이란과의 전쟁 이후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기 위해 홍해 항로를 적극 활용해왔지만, 최근 후티 반군의 공격이 격화되면서 이마저도 위협받고 있다. 이에 따라 사우디 원유는 수에즈운하와 아프리카 희망봉을 경유하는 더욱 길고 비용이 많이 드는 운송 경로로 내몰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 홍해 우회 전략 흔들리는 사우디 원유 수출
26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란과의 전쟁이 시작된 이후 사우디아라비아는 동부 유전에서 생산한 원유를 동서 송유관(East-West Pipeline)을 통해 홍해 연안으로 이동시킨 뒤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거쳐 아시아 시장으로 수출하는 방식을 확대했다. 이는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기 위한 핵심 전략이었다.
그러나 최근 후티 반군이 사우디 선박을 잇달아 공격하면서 이 우회 경로마저 불안정해졌다. 이에 따라 사우디산 원유는 이집트 수에즈운하를 통과하거나 아프리카를 우회하는 더욱 복잡한 항로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 유조선들 잇따라 항로 변경…수에즈 통과 물량 급증
선박 추적업체 보텍사(Vortexa)에 따르면 이번 주 최소 4척의 사우디 원유 운반선이 홍해 남단 바브엘만데브 해협 진입을 앞두고 방향을 바꿔 북쪽 수에즈운하로 향했다.
사우디는 이와 함께 이집트 지중해 항만에서 선적하는 원유 물량도 확대하기 시작했다. 7월 첫 3주 동안 수에즈운하를 통과한 해상 원유 물동량은 최근 2년 반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으며, 운하와 나란히 연결된 수메드(Sumed) 송유관 유입 물량도 전달보다 50%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 전쟁이 다시 그리는 세계 원유 물류 지도
이번 항로 변경은 장기화되는 중동 분쟁이 세계 원유 공급망을 다시 재편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아랍에미리트(UAE)와 쿠웨이트 등 걸프 산유국들은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할 수 있는 새로운 수출 경로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라크 역시 시리아를 거쳐 지중해까지 연결하는 신규 송유관 건설 협정을 체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국제유가 배럴당 100달러 재돌파 우려
시장에서는 중동 해상 운송 위험이 장기화될 경우 국제유가가 다시 배럴당 100달러를 크게 웃돌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는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다시 자극하고 이미 취약해진 세계 경제에 추가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지고 있다.
▲ 바브엘만데브도 봉쇄 가능성…이란 압박 수위 높여
수에즈 항로 역시 안전지대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이란 혁명수비대(IRGC) 고위 관계자들은 미국이 공격을 확대하거나 지상군 투입을 검토할 경우 바브엘만데브 해협과 홍해를 봉쇄하고 선박을 직접 공격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와 이집트는 후티 반군의 긴장 완화를 시도했지만 현재까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 "아시아 수출 비용 급증…유가 상승 압력 확대"
유라시아그룹의 에너지·이란 담당 선임 애널리스트 그레고리 브루는 사우디가 여전히 홍해를 통해 원유를 수출할 수는 있지만, 아시아 시장까지 이동하는 거리가 훨씬 길어지고 비용도 크게 증가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러한 상황이 결국 국제 유가 상승 압력을 더욱 키우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 후티 공격 확대…사우디와 미국 군사 대응
사우디 언론은 지난 금요일 홍해에서 사우디 선박 한 척이 공격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사우디군은 이에 대한 대응으로 호데이다 항구 인근 후티 반군 거점을 공습했다고 밝혔다.
앞서 이번 주에도 사우디 남부 해상에서는 유조선이 미확인 발사체에 맞아 화재가 발생했으며, 후티 반군은 미사일과 드론을 이용해 사우디 국적 선박 2척을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후티가 추가 공격을 감행할 경우 후티 세력과 이란 모두 강력한 군사적 응징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군 역시 13일 연속 이란 내 군사시설과 드론 저장시설, 해상 전력을 겨냥한 공습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 중동·러시아 동시 충격…에너지 시장 이중 압박
홍해 위기는 이미 호르무즈 해협 물동량 감소와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에너지 시설 공격이 겹친 상황에서 또 다른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시장의 공급 여력이 크게 줄어든 가운데 원유 가격은 추가 공급 차질 가능성을 반영하며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금요일 배럴당 약 97달러에서 거래됐으며, 전날에는 한때 100달러를 넘어섰다.
▲ 골드만삭스 "국제유가 120달러 가능"
그레고리 브루는 전쟁이 계속될 경우 국제유가가 상당 기간 100달러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골드만삭스 역시 이번 주 보고서를 통해 최악의 경우 국제유가가 배럴당 120달러까지 상승할 가능성을 제시했다.
RBC캐피털마켓의 글로벌 원자재 전략 책임자인 헬리마 크로프트는 후티의 지속적인 공격이 홍해 원유 수송량을 실질적으로 감소시키면서 "시장은 결국 우회로를 찾게 된다"는 기존 인식을 바꿀 수 있다고 분석했다.
▲ 사우디 핵심 우회망 '동서 송유관'도 한계
사우디는 전쟁 이후 동서 송유관을 활용해 홍해 연안 수출량을 하루 약 70만~100만 배럴 수준에서 약 490만 배럴까지 대폭 확대했다.
이는 세계 원유 공급량의 약 5%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 가운데 약 350만 배럴은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거쳐 대부분 아시아 시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 항로가 위험해질 경우 사실상 남은 선택지는 수에즈운하뿐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AFP/연합뉴스 제공] [AFP/연합뉴스 제공]](https://images.jkn.co.kr/data/images/full/102/31/1023139.jpg?width=1200)
▲ 수에즈 운하, 대체 경로지만 완전한 해법은 아니다
수에즈운하는 사우디 원유 수출의 대체 통로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완전한 대안은 아니라는 평가를 받는다.
운하 수심이 얕아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은 만재 상태로는 통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 선박은 수에즈만에서 화물 절반가량을 하역한 뒤 수메드 송유관을 통해 지중해로 원유를 이송해야 한다.
이후 가벼워진 선박이 운하를 통과한 뒤 다시 원유를 적재하거나, 별도의 선박이 화물을 인수하는 방식이 사용된다.
또는 화물을 두 척의 수에즈맥스(Suezmax)급 유조선으로 분산 운송하는 방법도 활용된다.
▲ 아시아 운송 최대 한 달 지연…운임·보험료 급등
수에즈를 거쳐 아시아로 향하는 경우 운송 기간은 기존보다 약 20~30일 늘어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항해 기간이 길어질수록 선박 회전율은 떨어지고 운임과 전쟁 위험 보험료도 함께 상승하게 된다.
특히 디젤과 항공유를 운반하는 제품 운반선은 원유 운반선보다 수에즈운하 의존도가 높아 연료 시장이 더욱 큰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 과거 위기가 만든 수메드 송유관…다시 주목
수메드 송유관은 과거 중동 분쟁의 산물이다.
1869년 개통된 수에즈운하는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후 1975년까지 폐쇄됐으며, 이를 계기로 홍해와 지중해를 육상으로 연결하는 수메드 송유관 건설이 추진됐다.
송유관은 1977년부터 본격적으로 운영되며 수에즈운하를 보완하는 핵심 인프라 역할을 수행해왔다.
▲ "이란, 두 해협 모두 활용하면 압박 수단 극대화"
이번 사태는 중동의 전략적 해상 요충지를 우회하는 데에도 분명한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외교협회(CFR) 지정학경제연구센터의 에드워드 피시먼 소장은 이란이 후티 반군과 협력해 호르무즈 해협과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동시에 통제하거나 봉쇄할 경우 미국과 걸프 국가들에 훨씬 강력한 압박 수단을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가 앞으로도 국제 에너지 시장의 가장 중요한 변수 가운데 하나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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