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심사 기간을 현행 최장 330일에서 90일로 대폭 단축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처리했다. 입법 절차의 장기화를 막고 쟁점 법안의 처리를 신속하게 하겠다는 취지지만, 야당은 충분한 심의와 협의를 거치지 않은 ‘다수당의 입법 독주’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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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개정안은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법안의 상임위원회 심사 기간을 60일, 법제사법위원회의 체계·자구 심사 기간을 30일로 각각 제한하는 내용을 담았다.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한 법안은 이후 열리는 첫 본회의에 자동 상정하도록 해 사실상 패스트트랙의 전체 처리 속도를 크게 높이는 구조였다.
▲ 패스트트랙 심사기간 330일에서 90일로
현행 국회법에서는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법안이 상임위에서 최대 180일, 법사위에서 90일, 본회의 부의까지 60일 등 최장 330일의 절차를 거쳤다. 정치적 쟁점이 큰 법안일수록 심사 과정에서 여야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사실상 장기간 계류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개정안은 이 같은 장기 심사 구조를 대폭 줄여 패스트트랙의 본래 취지인 ‘신속한 입법’을 강화하려는 데 초점을 맞췄다. 법안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이후에도 수개월에서 1년 가까이 국회에 묶이는 현상을 줄이고, 다수 의석을 가진 국회가 국민적 요구에 보다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심사 기간 단축은 입법의 효율성만큼이나 숙의 과정의 축소라는 문제를 동반했다. 특히 패스트트랙에 오르는 법안은 여야 간 정치적 이해가 첨예하게 충돌하는 경우가 많아 심사 기간이 짧아질수록 반대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커졌다.
▲ ‘신속 입법’과 ‘졸속 입법’ 사이
이번 개정안의 핵심 쟁점은 결국 속도와 숙의 사이의 균형이었다. 법안 처리가 지나치게 지연되는 것도 문제지만, 반대로 충분한 검토와 수정 없이 법안이 본회의까지 직행하는 것 역시 국회의 입법 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를 30일로 제한하고 법사위 전체회의 통과 이후 첫 본회의에 자동 상정하도록 한 부분은 입법 절차의 병목을 크게 줄이는 장치였다. 동시에 법안의 문구와 법 체계상 문제를 점검하고 여야 간 이견을 조율할 시간도 그만큼 줄어들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컸다.
결국 패스트트랙 제도의 취지가 ‘무조건 빠른 입법’에 있는지, 아니면 장기간의 정쟁으로 법안이 무한정 표류하는 것을 막는 데 있는지를 둘러싼 논쟁으로 이어질 전망이었다.
▲ 국민의힘 “반협치적 의회 폭거” 반발
국민의힘은 민주당 주도로 법안이 처리되자 표결에 참여하지 않고 운영위에서 퇴장했다. 야당은 쟁점 법안을 충분히 논의하지 않은 채 다수 의석을 앞세워 처리하는 것은 국회의 기본적인 협의와 숙의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은 쟁점과 이견이 있는 법안을 충분한 숙고 없이 처리하는 것이 민생과 무슨 관련이 있느냐며 비판했다. 특히 다수의 힘으로 법안을 밀어붙이는 행태를 ‘반협치적 의회 폭거’라고 규정하면서 여야 간 충돌을 예고했다.
개혁신당 천하람 의원 역시 반대표를 던지며 신중한 입법 절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빠른 입법만을 앞세우다 국민이 입게 될 피해까지 감수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었다.
▲ 입법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견제 장치’
이번 개정안은 다수당이 입법 과정에서 장기간 이어지는 지연을 차단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국회 운영 방식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다. 반면 야당의 견제와 법안 수정 요구가 실질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들 가능성이 있었다.
패스트트랙은 애초 소수 의견 때문에 법안이 무기한 표류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였지만, 심사 기간을 지나치게 줄일 경우 오히려 다수당의 입법 강행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장치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따라서 핵심은 90일이라는 숫자 자체보다 신속한 심사 과정에서도 충분한 토론과 수정, 야당의 견제가 가능하도록 어떤 안전장치를 마련하느냐에 있었다. 속도만 높이고 숙의와 합의의 공간을 줄인다면 패스트트랙은 ‘신속처리’가 아니라 ‘신속통과’ 수단으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여야 충돌 넘어 ‘국회법의 게임 규칙’ 바꾸나
이번 국회법 개정안은 단순히 특정 법안의 처리 기간을 줄이는 문제를 넘어 여야가 법안을 처리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사안이었다. 민주당에는 입법 지연을 해소하는 수단이 될 수 있지만, 국민의힘에는 다수당의 의회 운영 권한을 지나치게 강화하는 제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특히 향후 정권과 국회의 다수당이 바뀔 경우 같은 제도가 다른 정치적 목적에 활용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했다. 지금의 여당이 만든 신속 입법 장치는 향후 야당이 다수당이 됐을 때도 그대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논란은 민주당과 국민의힘 간 단순한 정쟁을 넘어 국회가 ‘빠른 입법’을 우선할 것인지, 아니면 ‘충분한 숙의와 합의’를 우선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의 문제였다. 입법 속도를 높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속도가 국민적 신뢰와 절차적 정당성을 훼손하지 않도록 견제와 숙의의 장치를 함께 갖추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