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만 반도체에 과도하게 쏠린 신흥국 증시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 주식시장이 지난 7월 큰 폭의 조정을 겪으면서 향후 시장의 방향에 관심이 집중됐다. 올해 상반기 강한 상승세를 보였던 신흥국 증시가 AI 투자에 대한 피로감과 거시경제 불안이 겹치면서 변동성 장세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신흥국 주식시장은 약 28% 상승했지만 7월 급락으로 연초 대비 상승률은 18% 수준까지 낮아졌다. 7월 말 한국 증시가 사상 최대 수준의 폭등을 기록하면서 낙폭을 일부 회복했지만, 신흥국 투자자들에게 7월은 불안이 집중된 한 달로 남았다.
![[연합뉴스제공] [연합뉴스제공]](https://images.jkn.co.kr/data/images/full/102/63/1026366.jpg?width=1200)
[연합뉴스제공]
특히 한국과 대만 증시의 움직임이 신흥국 시장 전체의 방향을 좌우하는 구조가 문제로 부각됐다. 한국과 대만은 MSCI 신흥시장 지수에서 약 45%를 차지하는 데다 반도체 기업의 비중까지 높아 특정 산업과 종목의 주가 변동이 신흥국 전체 지수의 등락으로 직결되는 모습을 보였다.
▲ AI 투자 열풍이 오히려 시장의 최대 변수
최근 신흥국 증시를 흔든 가장 큰 요인 가운데 하나는 AI 인프라 투자에 대한 불안이었다. AI 산업의 성장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는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인프라 투자가 과연 현재의 높은 기업가치를 정당화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대형주가 글로벌 AI 투자 사이클의 핵심 수혜주로 평가받으면서 이들 종목의 주가가 흔들릴 경우 신흥국 지수 전체가 영향을 받는 구조가 강화됐다.
반대로 7월 말 반도체 대형주의 급등은 신흥국 증시의 반등을 이끌었다. 이는 신흥국 증시가 국가별 경기 상황보다 글로벌 반도체 업황과 AI 투자 심리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 유가·인플레·연준까지 겹친 ‘3중 압박’
AI 관련 불안만으로도 시장의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서 국제유가와 인플레이션, 미국 통화정책이라는 거시경제 변수까지 겹쳤다.
중동 정세가 다시 불안해지면서 7월 국제유가는 약 20% 급등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의 통행이 정상화되지 않을 경우 에너지 가격 상승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신흥국 시장의 최대 위험 요인으로 부상했다.
유가 상승은 단순히 에너지 가격의 문제가 아니라 물가와 금리의 문제로 연결됐다. 원유 가격이 오르면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이 다시 높아질 수 있고, 이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하를 제약하거나 긴축 장기화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미국 금리 오르면 신흥국 채권부터 흔들린다
신흥국 투자자들이 미국 국채시장을 주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 금리가 상승하면 신흥국과 미국 국채 사이의 금리 차이가 좁아져 상대적으로 위험이 높은 신흥국 자산의 투자 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중동 전쟁 이후 이미 큰 폭으로 상승한 가운데 추가 상승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신흥국 채권시장에 대한 경계감이 커졌다.
미국과 신흥국 간 국채 스프레드가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까지 좁혀진 상황에서 미국의 긴축 기조가 장기화하면 신용등급이 낮은 국가와 재무구조가 취약한 기업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았다.
결국 신흥국 시장의 위험은 주식시장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미국 금리와 달러 강세가 동시에 나타날 경우 신흥국 주식과 채권, 통화가 함께 압박받는 복합적인 자금 이탈이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웠다.
▲ ‘매도세가 기회’라는 반론도 나왔다
다만 최근의 급락을 신흥국 시장의 구조적 붕괴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시각도 나왔다. 일부 투자자들은 AI 관련 매도세가 과도한 레버리지를 정리하고 시장을 정상화하는 과정이었다고 평가했다.
특히 개인투자자들의 레버리지 포지션이 청산되면서 단기적으로 급격한 주가 조정이 발생했지만, 장기적으로는 과열된 투자심리를 진정시키고 시장의 건전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분석이었다.
이는 현재의 조정을 무조건적인 위험 신호로 보기보다 기업 실적과 밸류에이션을 다시 따져볼 기회로 볼 필요가 있다는 의미였다.
▲ 반도체 쏠림이 기회이자 최대 위험
결국 신흥국 증시의 향방은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주가 얼마나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느냐에 크게 좌우될 가능성이 높았다. AI 투자 확대가 지속되고 반도체 수요가 견조하다면 한국과 대만 증시를 중심으로 신흥국 시장의 반등세가 이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AI 투자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이 커지거나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 기대가 꺾이면 상황은 정반대로 전개될 수 있었다. 신흥국 지수 자체가 소수 국가와 반도체 대형주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국제유가와 미국 금리, 달러 강세까지 동시에 악화될 경우 신흥국 시장은 다시 강한 매도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있었다.
따라서 7월의 급락은 단순한 일시적 조정이 아니라 신흥국 증시가 안고 있는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낸 사건으로 볼 필요가 있었다. AI와 반도체가 상승을 이끌었던 만큼 반대로 AI 투자 심리와 반도체주가 흔들릴 경우 하락 역시 증폭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앞으로 신흥국 시장의 핵심 변수는 반도체 실적과 AI 투자 지속성, 국제유가 안정 여부, 미국 연준의 금리 방향으로 압축됐다. 이 세 가지 변수가 안정된다면 최근 매도세는 장기 투자자에게 진입 기회가 될 수 있지만, 반대로 동시에 악화될 경우 7월의 급락이 추가 조정의 전조가 될 가능성도 경계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