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에 대한 새로운 군사공격을 연일 위협한 끝에 다시 외교적 해법으로 방향을 틀었다.
군사력으로도 뚜렷한 승리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걸프 지역 동맹국들을 앞세워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과 핵 협상 복원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움직임으로 분석됐다.
다만 미국과 이란의 협상이 과거에도 여러 차례 결렬됐던 만큼 이번 외교 시도 역시 성과를 장담하기 어려웠다.
협상이 다시 난항을 겪을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적 위협을 재개하는 익숙한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도 제기됐다.
▲ 군사공격 직전 외교로 급선회
2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일요일 기자들과 만나 미국이 월요일 오후부터 이란과 협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군사공격을 준비했지만 동맹국들의 만류를 받아 계획을 철회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준비가 완료됐지만 동맹국들이 공격 중단을 요청한 만큼 일단 협상 가능성을 지켜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번 결정은 대규모 공격 가능성을 높이며 이란을 압박한 뒤 막판에 외교로 전환하는 트럼프식 협상 전략의 연장선으로 해석됐다.
▲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이 첫 시험대
외교 협상의 당면 과제는 사실상 봉쇄된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 열어 상선 운항을 정상화하는 데 있었다.
오만과 이란은 선박의 해협 통과를 위한 협의가 진전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으며, 이란 측은 관련 절차가 마무리 단계에 접근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란이 상업용 선박에 통행료를 부과하겠다는 요구를 영구적으로 철회할지는 불투명했다. 협상이 제한적인 선박 통행 허용에 그칠지, 해협의 완전한 재개방으로 이어질지도 확인되지 않았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인 만큼 제한적 개방만으로도 국제유가와 물류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었다. 다만 임시 합의가 근본적인 갈등 해소로 이어지지 않을 경우 에너지 시장의 불안은 지속될 가능성이 컸다.
▲ 전쟁 6개월째…트럼프 지지 기반 약화
트럼프 대통령은 2월 말 이란 공격을 지시하며 전쟁을 시작했지만 국제사회의 지지는 제한적이었다.
당시 여론조사에서도 상당수 미국인은 이란이 즉각적인 핵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백악관의 주장에 충분히 설득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이 4주에서 6주 안에 끝날 수 있다고 전망하며 휘발유 가격 상승도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전쟁이 6개월째로 접어들면서 국내외 지지 기반은 약화됐다. 이란과 친이란 무장세력의 공격이 이어졌고 미군 사망자가 증가하면서 전쟁의 목표와 출구전략을 둘러싼 비판도 커졌다.
▲ 미군 사망과 유가 상승이 국내 정치 부담으로
이란은 최근 요르단과 바레인, 쿠웨이트 등 미국의 중동 동맹국들을 공격했으며 이라크 내 친이란 무장세력도 사우디아라비아를 향해 무인기를 발사했다.
특히 요르단 주둔 미군 기지에 대한 이란의 미사일 공격으로 미군 3명이 숨지면서 2월 이후 전사한 미군은 총 18명으로 늘어났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휘발유 가격 상승도 불러왔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은 원유 공급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비축유를 방출해야 했다.
중간선거를 약 3개월 앞둔 공화당 의원들은 백악관에 이란전의 구체적인 목표와 종전 방안을 명확히 설명하라고 압박했다.
전쟁이 장기화할수록 유가와 인명 피해, 재정 부담이 선거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 사우디가 군사행동 제동…이스라엘과 온도 차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선회에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걸프 동맹국들의 요구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통화한 뒤 군사공격보다 합의를 선호한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밝혔다.
사우디 측은 공격이 어디까지 확산될지 알 수 없는 만큼 군사행동보다 협상을 통한 긴장 완화가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을 함께 시작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는 공격 취소 결정을 사전에 알리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추가 군사행동을 주장한 이스라엘과 확전 방지를 요구한 걸프 국가들 사이에서 미국의 전략적 우선순위가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 이란, 걸프 국가 공격 가능성으로 압박
미국 중부사령부는 이란의 미사일 시설과 방위산업 기반, 주요 군사시설을 겨냥한 대규모 공격 방안을 준비했다.
군사 전문가들은 미국이 이란에 상당한 피해를 줄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란은 미국의 공격 계획에 협력하는 아랍 걸프 국가들을 보복 공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걸프 지역의 석유시설과 가스시설이 공격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됐고, 사우디를 비롯한 역내 국가들이 미국에 군사작전 중단을 요청하는 계기가 됐다.
미국의 대규모 공격이 이란의 군사력을 약화할 수는 있지만 역내 에너지 기반시설과 미군 기지, 동맹국을 동시에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점이 트럼프 대통령의 선택을 제약한 것으로 분석됐다.

트럼프 대통령(Photo : [AFP/연합뉴스 제공])
▲ 반복된 위협과 철회, 억지력 약화 논란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는 인사들은 군사공격을 예고했다가 철회하는 행보가 정교한 전략이라기보다 선택지 부족을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주이스라엘 미국대사를 지낸 대니얼 샤피로 전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오락가락하는 태도가 미국의 억지력에 심각한 타격을 줬다고 평가했다.
동맹국과 이란 모두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신뢰하지 않게 됐다는 주장이었다.
실제로 미국과 이란은 앞서 호르무즈 해협 선박 운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지만 해석 차이로 합의가 무산됐다.
이란군이 상선 여러 척에 발포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지도부를 강하게 비난했고 경제제재와 해상 봉쇄를 다시 시행했다. 이후 소규모 공습과 기간시설 공격 위협까지 이어지며 외교와 군사압박이 반복됐다.
▲ 외교 재개됐지만 승리 선언할 출구는 불투명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반복적인 군사 위협이 이란과 역내 국가들을 협상장으로 끌어내는 효과를 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란과 중동 국가들이 합의의 기본 틀이 마련됐다며 공격을 취소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외교와 군사 어느 쪽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명확한 승리를 선언할 수 있는 경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존스홉킨스대학교의 이란 전문가 밸리 나스르는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적 확전을 피하기 위해 외교적 해결을 시도하고 있지만 외교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확실한 승리에 도달할 길은 분명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 이란이 미국의 동요를 협상 지렛대로 활용할 수도
외교 협상은 대규모 전쟁의 위험을 일단 낮췄지만 새로운 위험도 안고 있었다.
이란이 트럼프 대통령의 잦은 입장 변화를 미국의 약점으로 판단할 경우 협상에서 최대한 많은 양보를 끌어내려 할 가능성이 있었다.
미국이 군사공격을 실제로 감행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통행권과 제재 해제, 핵 문제 등을 연계해 협상 조건을 높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이란 전문가 수전 멀로니는 항행의 자유를 보장하는 합의를 도출하는 일이 빠르거나 쉬울 수 없다고 평가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가 장기적이고 복잡한 협상을 감당할 정책 역량과 집중력을 갖췄는지도 분명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 군사적 승리보다 불완전한 타협 가능성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선회는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략적 결단이라기보다 군사행동이 초래할 위험을 피하기 위한 현실적 선택에 가까웠다.
미국은 이란의 미사일과 군사시설을 공격할 능력을 갖췄지만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걸프 국가에 대한 보복, 국제유가 급등을 동시에 막을 수 있는 수단은 제한적이었다.
결국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의 완전한 굴복보다는 해협의 단계적 재개방과 긴장 완화, 향후 핵 협상 재개를 묶은 불완전한 합의를 모색할 가능성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