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18일 검찰에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했다. 검찰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은 이날 오후 2시 최 회장을 불러 조사했다. 예상치 못한 검찰의 통보였고 최 회장은 13시간 넘게 조사를 받았다. 지난 해 11월 13일 1기 검찰 특별수사본부에 소환된데 이어 넉달 만의 검찰 소환이었다. 21일로 예정된 박근혜 전 대통령 소환조사를 앞두고 청와대와 SK의 최 회장 사면에 대한 대가성 의혹을 확인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사에서 최 회장은 "재단 출연과 그룹 현안 문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어떤 특혜도 없었다"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달 2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김세윤) 심리로 열린 국정농단 사건 관련 16차 공판에서 최 회장은 자신의 사면 취지에 대해 "일자리 창출로 이해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검찰이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최 회장의 사면이 대가성이 있었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검찰은 지난 해 2월, 최 회장과 박 전 대통령의 독대에 주목하고 있다. 그 전후로 해서 청와대와 SK간에 어떤 얘기가 오고 갔는지가 해결의 실마리가 될 것으로 보여진다.
박 전 대통령은 본래 정재계 인사들의 사면은 없다는 입장을 크게 강조해왔었는데 2015년 7월 13일 오전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사면 실시 필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갑작스런 입장 변화였고 그 이후 최 회장 사면이 이뤄졌다.
박 전 대통령 발언이 있었던 같은날 오후 김창근 전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안종범 전 수석을 만나 최태원 회장의 사면을 부탁했다. 김 전 의장의 말에 따르면 이때 안 전 수석은 김 전 의장에게 "대통령 국정 과제인 경제살리기나 투자확대 등을 대통령 면담 때 발표하면 좋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2015년 7월 20일 김 전 의장은 안 전 수석에게 "경제수석님, 지난번 말씀주신 내용에 대해 뵙고 논의드리고 싶습니다"라고 문자를 남겼고 안 전 수석의 당부대로 46조원의 투자 계획과 또 청년 일자리 확대 방안을 문건에 담아 건넸다. 사전 언질이 있었고 SK그룹은 그에 따라 준비한 것이다.
안 전 수석의 진술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2015년 8월 8일 "재계 총수 중 사면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곳은 SK다. 다만 국민 감정이 좋지 않으니까 정당성을 확보해 줄 만한 게 뭐가 있는지 SK로부터 받아서 검토하라"라고 지시했다. 안 전 수석은 곧바로 김 전 의장에게 이를 전달했고 또 관련 자료를 준비하라고 말했다.
이후 최 회장의 사면이 사실상 확정됐고, SK그룹 김영태 전 부회장이 당시 의정부 교도소에 수감 돼 있던 최 회장을 찾아갔는데 접견록에 드러난 내용에는 "왕 회장이 귀국을 결정했다. 우리 짐도 많아졌다. 숙제를 줬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왕 회장은 '대통령', 귀국은 '사면'으로 해석되고 있는데, 이 '숙제'가 무엇이냐라는 부분이 대가성과 관련해 검찰이 들여다보고 있는 부분이다. 이 단어의 의미가 뇌물인지, 아닌지에 대해 수사가 집중할 것으로 관측된다.
박 전 대통령은 최 회장 사면 전 대규모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요구했던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이외에 미르, K재단 출연금 그리고 비덱스포츠 지원 등까지도 대가성에 포함될지는 수사 결과를 좀 더 지켜봐야하는 상황이다.
18일 조사에서 최순실 씨가 독일에 세운 비덱스포츠에 SK가 30억원을 추가 송금하기로 한 것에 대해 검찰은 "대가 제공 약속 아니냐"라고 물었고 최 회장은 이에 대해 "최씨 측의 요구를 사실상 거절했던 것으로 안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SK 면세점 인허가와 계열사 세무조사, CJ헬로비전 인수 등 경영 현안과 관련해서도 정부 특혜가 있었는지 조사중이다. 이에 대해 SK는 최 회장 사면을 미리 알지 못했고 대가나 특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숙제'에 대해서도 그저 경제살리기에 대한 책임감을 말했을 뿐인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 조사 이후 SK와 롯데 등 뇌물 제공 의혹을 받고 있는 기업 관계자들에 대한 처리 여부도 한꺼번에 결정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