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경제가 서방 세계의 각종 제재에도 여전히 버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때 사상 최저 수준으로 급락했던 루블화 가치가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에 힘입어 우크라이나 침공 전 수준으로 반등한 것이다.
7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날 러시아에서 미 달러화 대비 루블의 환율은 75.75루블로 마감, 전쟁 이전 수준으로 회복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루블화 가치는 일련의 서방 제재로 인해 한때 사상 최저인 달러당 121.5루블까지 떨어진 바 있다.
당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를 두고 루블(ruble)이 '돌 무더기'(rubble)가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블룸버그는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이 루블 가치를 떠받치는 한 러시아 정부와 올리가르히(신흥재벌)에 대한 서방의 제재와 서방 기업의 연이은 탈(脫)러시아 행보가 러시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진단했다.
그러면서 루블 가치 회복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겐 큰 승리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블룸버그 산하 경제연구소인 블룸버그 이코노믹스(BE)는 올해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액이 3천210억달러(약 389조2천억원)로 지난해보다 33% 이상 급증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런 막대한 에너지 수출은 러시아의 경상수지 흑자로 이어져 루블 가치 상승에 기여할 수 있다.
최근 국제금융협회(IIF)는 올해 에너지 가격 급등에 힘입어 러시아의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2천억∼2천400억달러(약 242조5천억∼291조원)로 역대 최대 흑자였던 작년을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했다.
우크라이나 부차에서 러시아군의 민간인 학살 의혹이 제기된 이후 미국에 이어 유럽연합(EU)에서도 러시아산 에너지의 수입을 금지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으나, 제재 실행에 필요한 만장일치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시아의 에너지 수출은 계속되고 있다.
예컨대 중국의 몇몇 회사가 지난달 러시아산 석탄을 위안화로 결제했고, 그 첫 물량이 이달 중 중국에 도착할 예정이다.
또한 통상 유럽이나 미국으로 수출됐던 러시아산 원유가 인도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 시장에서 할인된 가격에 팔리고 있다.
에너지 제재 논의에도 EU의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는 오히려 높아졌다. 덕분에 러시아 국영회사 가스프롬의 경우 3월 주요 해외시장에서 일일 매출액이 전달보다 17% 증가했다.
미국 싱크탱크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패트릭 호노한 선임 연구원은 "금융·기타 제제가 러시아 경제를 약화시킨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서도 "이런 제재가 (러시아의) 수출에서 오는 수입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한 러시아 경제를 무력화하는 데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물론 루블화 가치의 최근 상승세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현재 러시아 환율시장이 더는 변동환율제라고 보기 어렵기에 러시아 당국의 여러 제한조치가 사라지게 되면 환율은 지금과는 다른 수준을 보일 것이라는 논리다.
앞서 러시아 당국은 서방 제재에 맞서 일련의 자본통제 조처를 단행했다. 외국인 투자자의 자산을 동결했고, 자국 기업이 보유한 외환의 80%를 루블로 환전하라고 지시했다.
푸틴 대통령은 EU 등 '비우호 국가'들에 대해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 대금을 루블로 결제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러시아 당국의 이런 비정상적 조치로 인해 루블 가치가 인위적으로 지지됐다는 의미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 6일 미 의회에 출석해 루블 가치 반등에서 어떤 결론을 끌어내지 말라고 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