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사진가 이정범의 출발]
도시는 변하고, 풍경은 사라진다.
그러나 사진은 남는다.
안양의 골목과 유원지, 관공서의 행사장과 건설 현장까지.
한 도시의 시간이 가장 먼저 스쳐 지나간 곳은 늘 사진가의 렌즈였다.
사진가 이정범은 1960년대 후반 안양에 정착한 이후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카메라로 도시의 변화를 기록해 왔다. 안양유원지(현 안양예술공원) 영업 사진사로, 안양시청 사진기사로, 그리고 지금은 안양의 과거와 현재를 정리하는 기록자로 살아온 그의 사진 속에는 도시의 성장뿐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낸 시민들의 얼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본 연재는 사진가 이정범의 구술 인터뷰를 통해 안양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한 사진가의 삶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 인터뷰 기사는 총 4회로 연재되며 첫 회에서는 사진과 인연을 맺게 된 그의 출발과 안양과의 첫 만남을 들어본다.
■ 사진가로서의 출발
Q. 처음 사진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A. 제가 1963년 15살 때 무작정 서울로 상경해 처음 일한 곳은 서울 서대문 영천시장 잡화상회입니다. 이곳에서 물건을 배달하다 힘에 부쳐서 그만둔 후 광화문 네거리 학원에서 밥을 얻어먹고 심부름하며 노숙 생활을 했습니다. 그때 학원에 드나들던 어느 분이 이런 데 있지 말고 나이가 어리니 기술을 배워야 먹고 살 수 있다며 사진관을 소개해 줬습니다. 그때는 사진이 뭔지도 모르고 먹고 재워주며 기술을 가르쳐 준다기에 적어도 굶을 걱정은 없겠다고 느꼈습니다. 일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아 서울 성동구 왕십리 미림사진관에 들어가 온갖 잡일을 다하며 기술을 배우면서 처음 사진과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Q. 1968년 안양유원지 사진부를 운영하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A. 1967년부터 우리 큰형님(작고)께서 서울농대 관악산연습림 (현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안양수목원)에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어 서울에서 사진기사 생활을 하며 안양유원지를 자주 드나들게 되었습니다. 안양유원지를 자주 오가다 보니 영업 사진사들을 만나게 되고 사진 영업을 하면 돈도 잘 벌 수 있고 수입도 괜찮을 것 같아 서울에서 사진기사 생활을 청산하고 1968년 안양유원지 지부에 정식 등록 영업 사진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1970년 군대 입대로 잠시 안양유원지를 떠났다가 1973년 제대하여 유유산업(현 안양박물관) 앞에 추억 DP&E 점을 차리고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안양유원지 영업 사진사로 복귀해서 사진의 현상·인화·확대를 하는 DP점과 영업 사진사를 병행했습니다. 제가 사진기사 출신이라 일을 잘하다 보니 유원지 영업 사진사들이 찍은 사진을 내가 운영하는 DP점으로 가지고 와 접수해 현상 인화를 하게 되니 자연이 유원지 사진부가 되었습니다.
■ 1960~1970년대 안양유원지 영업 사진사 시절
Q. 20대 시절 처음 마주한 안양의 모습은?
A. 1960년대 서울에서 안양유원지로 오려면 영등포구 대림동에 온 후 그곳에서 안양행 버스를 갈아타고 와야 했습니다. 안양에 도착하면 신안양 2리 1번 국도 안양영화예술학교 앞에서 내려 철길을 건너 미군 부대 앞을 지나 안양유원지로 갔습니다. 그때 미군 부대 주변은 미군 전용 비어홀과 술집, 식당, 가게들이 즐비했으며 안양유원지 입구 지역에는 안양포도를 재배하던 포도밭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서울 왕십리 사진관에서 2년 만에 사진 기술을 터득한 후 취직하여 일했던 곳은 행당동, 을지로 6가, 창신동, 효창동, 상도동 등 번화가에서 일했기 때문에 그때 서울과 안양을 비교하면 한적한 시골 농촌 모습과 공장이 많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Q. 당시 안양유원지는 어떤 공간이 이었고 어떤 사람이 모이던 공간이었나요?
A 안양유원지는 1933년 일본인 안양역장 혼다 사고로와 안양유지들이 뜻을 모아 삼성천 계곡을 막아 천연 수영장을 조성한 후 ‘안양뽀드장’이라 불렀습니다. 1960~70년대 대형 풀장과 더불어 다양한 위락시설, 놀이시설, 오락시설 등이 들어섰고, 음주가무를 즐길 수 있는 안양유원지로 유명했습니다.
이때는 봄이 되면 안양과 서울의 학생들이 소풍을 많이 왔고 서울과 수도권에서 관광 나온 상춘객들로 성황을 이루었으며 여름이면 피서를 즐기려는 수영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가을에는 안양포도를 맛보려고 전국에서 인파가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었습니다. 우리 DP점 앞 주변 도로에도 관광객들이 먹고 뱉은 포도 껍질로 검게 물들고 미끄러워 청소하느라 애를 먹기도 했습니다.
■ 안양유원지 사진사로서의 기억
Q. 안양유원지 사진사로 일하며 가장 많이 찍었던 순간은 어떤 장면들이 있나요?
A. 제가 1960년대 처음 안양유원지 영업 사진사로 일할 때는 사진사가 약 15명 정도였는데, 1970년대 중반에는 10명 정도 영업했고 저는 NO10번을 달고 영업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유 원지에는 계절별로 사진이 잘 찍히는 장소가 있습니다.
봄이면 계곡에 단체로 놀러 오는 부녀자들과 뽀드장과 출렁다리 쪽에서 주로 촬영했습니다. 여름에는 대영풀장을 비롯하여 맘모스풀장. 만안각수영장. 안양관광호텔 수영장에서 촬영했습니다. 가을에는 안양포도밭이나 아베크족. 가족들을 주로 촬영했습니다.
내가 제일 즐겨 촬영하던 곳은 안양관광호텔 앞과 뽀드장, 출렁다리 쪽으로 연인들과 가족사진을 주로 많이 촬영했습니다. 그때 촬영했던 사진과 필름들은 안타깝게도 1977년 안양지역이 대홍수를 맞았을 때 DP점 가게도 침수되어 사진과 필름이 모두 떠내려가고 분실되어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Q. 지금도 기억이 남는 인물이나 사진 풍경이 있다면요?
A. 예나 지금이나 주로 사진 촬영 대상은 가족. 연인. 유희. 오락 등입니다. 1960~70년대 초는 카메라를 보유하고 있는 가정이 드물어 가족이나 연인들이 고궁이나 유원지로 나들이 가면 대개 영업 사진사들을 통해 기념사진을 촬영하곤 했습니다.
그때는 컬러사진이 드물고 주로 흑백사진을 촬영했는데 어쩌다 컬러사진을 원하면 손님에게 돈을 더 받고 촬영해 주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흑백으로 촬영해 놓고 빨간 치마 노란 저고리로 만들어 달라는 사람도 있고, 사진 빨리 달라고 쫓아다니는 사람, 사진 촬영해 놓고 돈 안 주는 사람, 술 먹고 행패 부리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치는 직업이 안양유원지 영업 사진사들이 겪는 일상이었습니다.
▶다음 회
안양시청 사진사로 활동하던 시절의 기억과 1960~70년대 안양의 풍경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첨부 사진은 이정범 사진가 제공)
■ 사진가 이정범 (Profile)
사진기자이자 기록사진가.
1960년대 후반 안양에 정착해 안양유원지 영업사진사로 활동했으며, 이후 안양시청 공보실 사진기사로 27년간 근무하며 안양의 주요 순간들을 기록했다.
행정자치부 장관상, 경기도지사상, 안양시장상 5회 수상.
경기도관광협회 관광사진공모전 장려상(1974)·우수상(1976), 안양사진공모전 특선(1998), 의정부사진공모전 대상(2002), 경기도 포토제안공모전 금상(2002) 등 다수의 수상 경력이 있다.
「안양옛사진전」(2000)을 비롯해 시민축제 안양옛사진전(2005·2010), 우리안양지(1999~2026) 등을 통해 안양의 어제와 오늘을 시민들에게 소개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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