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반도체 EUV 장비 도입 34일서 9일로 단축... 정부, 고압가스 규제 혁파로 초격차 지원

이성경 기자
반도체 EUV 장비 도입 34일서 9일로 단축... 정부, 고압가스 규제 혁파로 초격차 지원
©연합뉴스

 

정부가 반도체 핵심 공정의 필수 장비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도입 절차를 기존 34일에서 9일로 대폭 단축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규제 완화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은 장비 한 대당 약 5억 원의 비용을 절감하며 첨단 생산라인 구축에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산업통상부는 2일 국무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고압가스 안전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하고 다음 주부터 즉시 시행한다.

정부의 이번 조치는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국내 기업들의 설비 투자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적 판단으로 풀이된다. 기존에 복잡한 기술 검토와 검사 절차로 인해 지연되던 EUV 장비 설치 과정이 '특정설비' 분류 전환을 통해 획기적으로 간소화된다. 이는 반도체 제조 공정의 핵심 자산인 EUV 장비가 지닌 특수성을 반영하여 법적 규제를 합리화한 결과다.

그동안 EUV 장비는 내부에 고압가스 배관과 장치가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로 현행법상 '고압가스 제조설비'로 분류되어 엄격한 관리 대상이었다. 기업들은 장비를 도입할 때마다 매번 개별적인 기술 검토를 거쳐야 했으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행정적 비용과 시간 소모가 상당하다는 불만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산업부는 업계와의 긴밀한 소통을 통해 글로벌 안전 기준을 충족한 장비에 한해 규제 적용 방식을 변경하기로 확정했다.

규제 완화에 따른 안전 공백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는 사후 관리 체계를 강화하는 보완책을 함께 마련했다. EUV 장비를 특정설비로 분류하는 대신 3년 주기로 정기적인 공장 심사와 종합 공정 검사를 실시하여 기존 수준의 안전성을 유지할 방침이다. 이는 규제 완화가 자칫 안전 불감증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법치주의적 관리 감독을 병행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이번 제도 개선의 핵심은 행정 절차의 효율화를 통한 실질적인 경제적 이익 창출에 있다. 도입 기간이 최대 25일 단축됨에 따라 기업들은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 맞춰 생산 라인을 적기에 가동할 수 있는 유연성을 확보하게 됐다. 특히 해외 공인검사기관에서 수행하던 내압 및 기밀 검사 과정이 생략되면서 장비 도입에 따른 직접적인 금융 부담도 경감될 전망이다.

산업부는 반도체 분야 외에도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저해하는 낡은 규제들을 발굴하여 합리화하는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물과 세제 대신 이산화탄소를 사용하는 친환경 세탁기의 상용화를 위해 맞춤형 검사 기준을 신설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해당 설비는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이미 안전성이 검증되었으며 폐수 처리가 필요 없는 혁신적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기업의 인력 운용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위험성이 낮은 고압가스 시설의 안전 관리 자격 요건도 대폭 완화된다. 상업용 액화 이산화탄소 세정 설비나 고압가스 저장 시설 등 사고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분야가 이번 완화 대상에 포함됐다. 이는 시장 질서를 존중하면서도 현장의 불필요한 규제 비용을 줄여 민간 주도의 성장을 뒷받침하려는 정부의 기조를 반영한다.

정부 당국은 이번 조치가 첨단 산업의 투자 환경을 개선하는 마중물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이번 법령 개정은 안전 확보와 첨단산업 경쟁력 강화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대표적인 규제혁신 사례다"라고 밝혔다. 김 장관은 이어 "앞으로도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안전관리 체계를 통해 첨단산업 투자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고압가스 설비에 대한 검사 절차 간소화가 장기적으로 안전 관리의 허점을 만들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특정설비로의 전환이 형식적인 점검에 그치지 않도록 정부의 철저한 사후 감독과 기업의 자율적 안전 수칙 준수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안전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법적 보완 장치에 대한 논의도 지속될 필요가 있다.

이번 시행령 개정안은 다음 주 중 공포와 동시에 시행되어 현장에 즉각적인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시행령에 이어 시행규칙 개정도 속도감 있게 추진하여 규제 혁신의 체감도를 높일 계획이다. 반도체 초격차 전략을 뒷받침하기 위한 정부의 전방위적 지원 사격이 국내 제조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산업 현장에서는 이번 규제 해소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 대규모 단지 조성 사업에 긍정적인 신호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공사 현장의 장비 도입 속도가 빨라지면 전체적인 공기 단축과 공정 효율화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정부는 향후에도 기업의 투자 발목을 잡는 현장 밀착형 규제를 지속적으로 발굴하여 개선해 나갈 방침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고압가스 안전관리법 개정은 법치와 효율의 균형을 맞추려는 적극 행정의 결과물이다. 규제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기술 발전에 따른 유연한 적용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평가를 받는다. 첨단 산업의 생태계가 속도전에 기반하고 있는 만큼 정부의 규제 혁파 속도가 곧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재확인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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