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가 미국 기술주 폭락과 중동의 무력 충돌이라는 이중 악재를 맞으며 8,000선 붕괴 위기에 직면했다. 직전 거래일 5.54% 급락하며 역대 세 번째 낙폭을 기록한 코스피는 환율이 17년 만에 1,560원을 돌파하는 등 외국인 자금 이탈 가속화로 인해 하방 압력이 극에 달한 상태다. 다만 방한 중인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가 제시한 신사업 비전이 반도체 대형주를 중심으로 차별화된 반등 동력을 제공할지 주목된다.
국내 금융 시장이 글로벌 긴축 우려와 지정학적 리스크가 결합된 복합 위기 국면에 진입하며 투자 심리가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지난 5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478.82포인트(5.54%) 폭락한 8,160.59로 장을 마감하며 시장에 큰 충격을 던졌다. 지수는 장중 한때 8,038.10까지 밀려나며 심리적 마지노선인 8,000선을 위협받았고 급격한 하락세로 인해 프로그램 매도호가 일시효력정지인 사이드카가 발동되기도 했다. 이는 역대 세 번째로 큰 하락 폭으로 기록되었으며 대외 변수에 취약한 한국 증시의 변동성을 고스란히 드러낸 결과로 풀이된다.
외국인 투자자의 기록적인 매도 행진과 원·달러 환율의 가파른 상승세는 증시 회복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외국인은 코스피 시장에서 3조 5,387억 원을 순매도하며 20거래일 연속 '팔자' 기조를 유지했는데 이는 역대 9번째로 긴 순매도 기록에 해당한다. 환율은 주간 거래에서 1,539.1원까지 치솟은 데 이어 야간 거래에서는 1,560원선을 돌파하며 17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하는 기염을 토했다. 가파른 원화 약세는 외국인 투자자에게 환차손 부담을 가중시켜 자본 유출을 가속화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미국 노동시장의 예상 밖 호조가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상 가능성을 재점화하며 뉴욕 증시의 기술주 투매를 촉발했다. 5월 비농업 일자리가 시장 예상치인 8만 명을 크게 웃도는 17만 2천 명 증가로 발표되자 시장은 긴축 장기화 공포에 휩싸였다. 이에 따라 나스닥 종합지수가 4.18% 급락했고 엔비디아와 마이크론테크놀로지 등 주요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가 동반 폭락하며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10.26% 주저앉았다.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심리적 저항선인 4.5%를 넘어서는 등 고금리 환경이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중동 지역에서 발생한 직접적인 무력 충돌은 국제 금융 시장의 불확실성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또 다른 뇌관이다.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베이루트를 공습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이란이 이스라엘 북부를 향해 탄도 미사일 10여 발을 발사하며 전면전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이란의 자폭형 공격 드론이 격추되는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실물 경제와 공급망에 미치는 영향이 가시화되는 상황이다. 이스라엘군이 즉각적인 보복 타격을 예고함에 따라 안전 자산으로의 자금 쏠림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면초가의 상황 속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의 방한 행보는 국내 IT 및 반도체 기업들에게 유일한 반등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황 CEO는 방한 기간 중 SK, LG, 네이버 등 주요 기업 총수들과 연쇄 회동을 갖고 차세대 AI 가속기 '베라 루빈'과 AI 엣지 슈퍼컴퓨터 '젯슨 토르' 등 4대 신사업 계획을 공개했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수뇌부와의 면담이 예정되어 있어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비롯한 반도체 공급망 협력 강화에 대한 기대감이 장중 변동성을 완화할 변수로 꼽힌다. 그는 "한국을 위한 깜짝 선물이 준비돼 있다"고 언급하며 국내 반도체 생태계와의 밀접한 결합 가능성을 시사했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에 확전 자제를 촉구하며 외교적 협상 가능성을 열어둔 점은 시장의 극단적인 공포를 다소 진정시킬 수 있는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인터뷰에서 이란과의 협상이 이번 주 초중반 중으로 합의에 이를 수 있는 방향으로 진전되고 있다고 밝히며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했다. 이는 중동발 지정학적 위기가 전면전으로 치닫지 않고 외교적 합의로 마무리될 수 있다는 희망을 시장에 부여하는 요소다. 급락에 따른 기술적 반등을 노리는 저가 매수세가 유입될 수 있다는 신중한 관측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증시 전문가들은 당분간 국내 증시가 대외 악재를 소화하며 높은 변동성 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이번 주 코스피는 지난주 금요일 미국 증시 급락 여파 속 달러/원 환율 부담 등을 소화하면서 변동성 확대 국면을 이어갈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투자자들은 반도체 대형주의 외국인 수급 변화와 외환 시장의 안정 여부를 최우선으로 주시하며 보수적인 포트폴리오 운용을 유지해야 한다. 특히 중동의 군사적 긴장이 실질적인 에너지 가격 급등이나 공급망 차질로 번지는지 여부가 향후 지수의 향방을 가를 핵심 지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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