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와 유럽 최대 기술 행사인 비바테크(VivaTech)의 핵심 화두는 인공지능(AI) 기술 주권이었다.
미국이 첨단 AI 모델에 대한 해외 접근을 제한하면서 유럽 내에서는 미국 기술 의존도가 AI 경쟁력과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유럽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AI 분야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미국 기업들이 장악한 클라우드와 반도체, AI 모델에 대한 의존도를 단기간에 줄이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 美 AI 통제 강화에 유럽 위기감 확대
이번 논의의 배경에는 미국 정부의 AI 수출 통제 강화가 자리하고 있다.
최근 미국은 앤트로픽(Anthropic)의 최첨단 AI 모델에 대해 외국인 접근 제한 조치를 강화했다.
이는 국가안보를 이유로 첨단 AI 기술의 해외 확산을 통제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됐다.
유럽에서는 이러한 조치가 미국의 정책 변화에 따라 언제든 AI 서비스 이용이 제한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업계에서는 유럽이 자체 AI 역량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글로벌 AI 경쟁에서 구조적인 약점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 G7·비바테크서 '기술 주권' 집중 논의
프랑스 에비앙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는 앤트로픽과 오픈AI, 구글, 미스트랄(Mistral) 등 주요 AI 기업 경영진이 참석했다.
17일(현지 시각)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회의에서는 AI 경쟁력과 규제, 중국 희토류 의존 문제와 함께 AI 기술 주권이 핵심 의제로 다뤄졌다.
파리에서 열린 비바테크 역시 비슷한 분위기였다.
18만 명 이상의 방문객과 스타트업, 투자자, 정책 담당자들이 참가한 이번 행사에서는 신기술보다 AI를 둘러싼 지정학적 경쟁과 정책 문제가 더 큰 관심을 받았다.
IBM의 아나 파울라 아시스 수석부사장은 "이번 비바테크에서 기술 주권이 가장 중요한 논의 주제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 유럽의 딜레마…자율성 원하지만 美 기술 의존
현재 유럽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전략적 자율성과 기술 현실 사이의 간극이다.
유럽은 독자적인 AI 생태계 구축을 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미국 기업들이 제공하는 클라우드 서비스와 AI 모델, 반도체 설계 기술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수십억 유로 규모의 투자가 진행됐음에도 유럽 AI 기업들은 여전히 미국 인프라 없이는 첨단 AI 서비스를 운영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는 유럽이 AI 주권을 주장하면서도 미국 기술과의 협력을 완전히 끊을 수 없는 구조적 한계를 보여준다.
▲ 미스트랄, 유럽 AI 대표주자 역할 강화
프랑스 AI 스타트업 미스트랄은 현재 유럽이 가장 기대를 걸고 있는 AI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스트랄은 제조업과 금융, 공공서비스 등 유럽이 경쟁력을 가진 산업 분야를 중심으로 유럽 기업들과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유럽은 미국 빅테크와 정면 승부를 벌이기보다 특정 산업에 특화된 AI 서비스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미스트랄 역시 미국산 반도체와 클라우드 자원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어 완전한 기술 독립과는 거리가 있다고 분석했다.

G7 정상회의(Photo : [UPI/연합뉴스 제공])
▲ 프랑스 "미국 기술 의존 줄여야"
프랑스 정부는 유럽 기술 주권 확보를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국가 가운데 하나다.
최근 프랑스 정부는 공공 서비스 분야에서 미국 IT 기업 의존도를 줄이는 정책을 확대하고 있다.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프랑스 총리는 "외국 세력이 개발한 도구에 의존할 수 없다"며 "프랑스는 자체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AI를 단순한 산업 기술이 아닌 국가 주권 문제로 바라보는 유럽의 시각을 보여주는 발언으로 해석됐다.
▲ EU, AI 기가팩토리 구축 추진
유럽연합(EU)은 AI 주권 강화를 위해 대규모 인프라 투자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최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AI 전용 '기가팩토리(Gigafactory)'와 초대형 컴퓨팅 인프라 구축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유럽이 자체적인 AI 연산 능력을 확보해 미국 기업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전략이다.
또한 클라우드와 AI,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각종 법안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유럽이 미국보다 수년 이상 뒤처져 있다는 평가가 여전히 우세하다.
▲ "언제든 차단되지 않는 AI 필요"
유럽 기업들 역시 독자적인 AI 서비스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프랑스 통신기업 오렌지(Orange)는 "유럽이 직접 통제할 수 있고, 누군가의 정치적 결정에 따라 갑자기 차단되지 않는 AI 서비스에 접근해야 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고 밝혔다.
최근 미국의 AI 접근 제한 사례가 유럽 기업들에게 경각심을 준 것으로 분석됐다.
기술 경쟁력뿐 아니라 서비스 지속 가능성 자체가 기술 주권 논의의 핵심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 기술 주권 확보 비용 부담도 현실
다만 기술 주권 확보에는 상당한 비용이 수반된다.
컨설팅 기업 캡제미니의 카린 브루네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유럽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할 경우 최대 40% 수준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기술 독립이 가져올 이익과 추가 비용 사이에서 현실적인 판단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기술 주권이 중요하지만 경제성 역시 무시할 수 없다는 의미다.
▲ "대체가 아닌 균형 전략 필요"
전문가들은 미국 기술을 완전히 배제하는 방식이 현실적인 해법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비바테크의 프랑수아 비투제 대표는 "기술 주권은 단순히 한 공급업체를 다른 공급업체로 교체하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핵심 기술 분야에서는 유럽 기술을 적극 활용하되 글로벌 기업들과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은 유지하는 균형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유럽이 독자 노선을 추구하면서도 글로벌 기술 생태계와의 연결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접근으로 평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