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지을 데가 없다」던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이 무색하게, 정부가 불과 1년여 만에 신규 원전 건설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오늘(2026년 06월 17일) 발표된 신규 대형 원전 후보지 경북 영덕군과 소형모듈원자로(SMR) 후보지 부산 기장군 선정은 급증하는 전력 수요 앞에서 탈원전 기조에서 벗어나 현실론을 택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다.
한국수력원자력 부지선정평가위원회는 이날 회의에서 신규 대형 원전 2기 후보지로 경북 영덕군을, SMR 후보지로 부산 기장군을 최종 선정했다고 밝혔다. 출범 초기 신규 원전 건설에 신중한 입장을 보였던 정부의 태도 변화는 불과 1년여 만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초 '원전 지을 데가 없다', '최소 15년이 걸린다'고 언급하며 회의론을 피력한 바 있으나, 2026년 1월 원전 건설을 확정하며 전력난 극복의 핵심 방안으로 원전을 지목했다. 특히 이 대통령이 「딱 한 곳 있다. 지으려다가 그만 둔 곳」이라고 지칭했던 곳이 영덕이었다는 점은 이번 결정의 극적인 반전을 더한다. 반도체 등 첨단산업,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전기차 등으로 인한 전력 수요 급증 전망이 이러한 정책 전환의 핵심 배경으로 작용했다.
영덕군이 대형 원전 후보지로 낙점된 데에는 '속도전'의 현실적 근거가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과거 이명박 정부 당시 천지원전 1·2호기(각 1.5GW) 예정지로 고시돼 한국수력원자력이 부지 19%를 이미 사들였고, 지질 조사와 환경영향평가도 상당 부분 진행된 상태다. 무엇보다 2026년 2월 실시된 영덕군민 여론조사에서 86%가 원전 유치에 찬성한 점이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김광열 경북 영덕군수는 원전 유치로 인한 '인구 유입 및 지역경제 활성화' 등 경제적 효과를 기대했다.
SMR 후보지인 부산 기장군 역시 고리원자력본부 내 과거 신고리 7·9호기 부지로 검토된 '전원개발예정부지'였기에 행정절차가 완료됐고, 송전망 등 기반 설비가 이미 갖춰져 빠른 건설이 용이하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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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이번 결정은 국내외적으로 가속화되는 '원전 르네상스' 흐름과도 궤를 같이한다. 제12차 전기본 수립 총괄위원회는 2040년 연중 최대 전력 수요가 최고 138.2GW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11차 전기본의 2038년 전망치(129.3GW) 대비 8.9GW 증가한 수치로, 원전 2~6기 추가 건설에 해당하는 규모다. 국제에너지기구(IEA) 등은 세계 원전 설비용량이 2023년 372∼416GW에서 2050년 평균 813GW로 급증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는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을 통해 2037년과 2038년 1.4GW급 대형 원전 2기, 2035년과 2036년 0.7GW급 SMR 도입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원전 건설 '속도전' 이면에는 해결해야 할 난제들도 산적하다. 가장 큰 문제는 송전망 부족이다. 2024년 3회에 불과했던 원전 출력제어 횟수는 2025년 37회로 1년 만에 12배 이상 폭증했으며, 태양광 출력제어 또한 2024년 57회에서 2025년 88회로 늘었다. 신규 원전 신설이 재생에너지 확산을 억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지점이다. 국회미래연구원은 5∼10차 전기본이 전력 수요를 과대 추정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수요 전망의 신뢰성에 의문을 던졌다. 영남 동해안의 세계 최고 수준 원전 밀집도 심화도 논란이다. 새울원자력본부, 고리원자력본부 인근에 추가 원전이 들어설 경우 복합재난 위험이 높아지고, '수도권 위한 비수도권 희생' 구조를 고착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영덕군민 86%의 찬성 또한 '인구 유입 및 지역경제 활성화' 등 경제적 이익 때문으로,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지역에서는 거부하기 어려운 효과」라는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국민의힘 김소희 의원은 환경과 지역 주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신중한 진행을 촉구했다.
새 원전 후보지 선정을 통해 정부의 원전 정책은 본격적인 '속도전'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급증하는 전력 수요와 탄소중립 목표 달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평가와 함께, 동남권 원전 밀집 심화, 송전망 부족 문제, 지역사회 반발 가능성 등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원전 르네상스'의 장밋빛 전망 뒤에 가려진 이러한 난제들을 어떻게 풀어갈지, 정부의 다음 행보에 이목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