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실미도 4명 총살, 50년 만의 '국가 기만'…87세 변호사 폭로

87세 김중권 변호사의 50년 만의 충격적 증언으로 실미도 공작원 4명의 사형 뒤에 숨겨진 '국가 기만'이 명확히 드러나며, 우리는 과연 '정의'를 논할 자격이 있는지 되묻고 있다.

사형 집행을 지휘했던 김중권 변호사는 지난 6월 18일,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국방부가 1971년 사형 선고를 받은 실미도 공작원들에게 '베트남 파병'을 미끼로 상고 포기를 유도했다고 최초로 폭로했다. 이는 50년 넘게 침묵했던 국가의 비극적인 기만행위를 만천하에 공개한 것이다.

'실미도 부대'의 비극은 1968년 1월 21일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침투 사건에 대한 대응으로 시작됐다. 당시 '김일성 암살'을 목표로 31명의 특수부대가 실미도에 창설되었으나, 약속 불이행과 가혹한 처우가 이어지면서 공작원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결국 1971년 8월 23일, 이들은 실미도를 탈출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이 과정에서 임성빈, 이서천, 김창구, 김병염 등 4명만이 생존했다.

생존 공작원 4명은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1971년 12월 사형 선고를 받았다. 당시 공군고등군법회의 재판장이었던 김 변호사는, 2026년 6월 18일 폭로에서 '베트남 파병'이라는 허위 정보를 이용해 공작원들의 상고를 포기시켰다고 밝혔다. 결국 1971년 12월 30일 사형이 확정되었고, 1972년 3월 10일 이들은 오류동 사격장에서 총살형에 처해졌다.

실미도 4명 총살, 50년 만의 '국가 기만'…87세 변호사 폭로
[사진=AI 생성]

사형 집행 직전, 이들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마지막까지 항거했다. 임성빈 공작원은 「김일성 목구멍에 총구멍을 못 내 한」이라는 유언을 남겨 당시의 절박함을 보여줬다. 특히 당시 헌병대는 '공포탄'을 사용했다고 발표했지만, 김 변호사는 '모두 실탄이 사용됐다'고 증언해 그날의 진실을 뒤집었다. 이들의 시신은 '오류동' 인근에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김 변호사의 증언으로 국가 기만이 명확해졌지만, 실미도 공작원들의 유해 발굴은 여전히 난항을 겪고 있다. 국방부는 2026년 5월부터 6월까지 벽제묘지공원과 오류동 일대에서 유해 발굴 작업을 진행했으나, 현재까지 유해를 찾지 못했다. 유족인 임충빈 씨와 이향순 씨 등은 진실 규명과 함께 사랑하는 이들의 유해라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오열하고 있다.

이번 폭로를 계기로 실미도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과 유해 발굴 노력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국가의 비가역적인 폭력 행사, 즉 사형제도의 본질적 문제와 국가 책임론이 다시금 부상하고 있다. 일본의 사형수 무죄 사례, 광주 여고생 사건 등 과거 오판의 가능성이 제기되었던 사건들을 상기하며, 우리는 '사형이 과연 되돌릴 수 없는 정의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 앞에서 깊은 성찰을 촉구받고 있다.

저작권자 © 재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치/사회

글로벌

정치/사회

기업/산업

경제

국내 증시

부동산

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