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40년 넘게 미국 정부의 보호 아래 살았던 70대 칠레 전 비밀요원 아르만도 페르난데스 라리오스가 '최악 중의 최악'이라는 낙인과 함께 추방 위기에 직면했다. 냉전 시대 미국의 '유용한 협력자'였던 그의 운명은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 미국의 외교적 실용주의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의 기구한 운명은 1976년 9월, 칠레 피노체트 독재정권 반대파 오를란도 레텔리에르 전 외무장관 암살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페르난데스는 워싱턴DC 차량 폭탄 테러에 관여했으며, 이는 미국 수도에서 벌어진 전대미문의 테러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러나 냉전 시대의 복잡한 역학은 그의 운명을 바꿨다. 당시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칠레 피노체트 정권을 지원하던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이해관계 속에서 페르난데스의 자백을 요구했다. 1987년 2월, 그는 외국 공무원 살인 사후 방조 혐의 유죄를 인정받았으나, 조지 슐츠 국무장관의 선처 요청으로 수감 5개월 만에 초고속 석방됐다. 칠레 추방 대신 플로리다에 정착한 그는 냉전 시대 미국의 중남미 정책이 낳은 아이러니한 특혜를 누렸다.
미국의 보호는 점차 약화됐다. 2003년, 페르난데스는 피노체트 정권 대량 학살 관련 손해배상 판결을 거부했음에도 미국 생활을 이어갔다. 하지만 2005년 특별 비자 신청이 거부되는 등 그에 대한 보호 의지는 시간이 흐르며 균열을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