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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공공결제망 '픽스' 급성장에 미국 통상압박

브라질의 실시간 결제 시스템 '픽스(Pix)'가 미국과 브라질 간 새로운 통상 갈등의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브라질 중앙은행이 운영하는 공공 결제망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미국 신용카드 기업들의 시장 지배력을 위협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자, 미국 정부가 무역 장벽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갈등이 단순한 통상 분쟁을 넘어 차세대 글로벌 결제 인프라 주도권 경쟁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 미국, 픽스를 '무역 장벽'으로 지목

21일(현지 시각)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제이미슨 그리어 대표는 브라질산 제품에 대한 25%의 신규 관세 부과 근거 가운데 하나로 브라질 중앙은행이 운영하는 픽스 시스템을 지목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픽스 자체를 폐지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결제 시스템이라는 이유로 민간 사업자보다 우대받는 상황은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 고위 관계자는 "브라질이 픽스를 없애라는 것이 아니라 정부 소유라는 이유만으로 특별한 혜택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 브라질 "미국 카드사 보호 위한 압박"

브라질 정부는 미국의 문제 제기가 사실상 비자(Visa), 마스터카드(Mastercard) 등 미국 신용카드 기업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반박했다.

미국 무역대표부는 브라질의 결제 정책이 미국 디지털 무역 기업과 전자결제 서비스 기업들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브라질은 공공서비스를 민간기업과 동일한 기준으로 비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맞섰다.

▲ 픽스, 카드 결제 생태계 뒤흔든 혁신

픽스는 은행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계좌 간 실시간 송금을 지원하는 즉시결제 시스템이다.

개인 간 송금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며 기업 역시 기존 카드 결제보다 훨씬 낮은 수수료와 빠른 정산이 가능하다. 중간 카드 네트워크를 거치지 않아 결제 비용을 크게 줄인 것이 가장 큰 경쟁력으로 평가받는다.

전문가들은 픽스가 수십 년간 글로벌 결제시장을 장악해온 신용카드 중심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 브라질 중앙은행 "공공서비스일 뿐"

가브리엘 갈리폴루 브라질 중앙은행 총재는 미국의 비판에 대해 강하게 반박했다.

그는 "픽스 때문에 카드사의 수익이 감소했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다"며 "오히려 픽스가 수많은 국민의 은행 계좌 개설을 유도하면서 신용카드 이용자 수도 절대적인 숫자로는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픽스는 경쟁자가 아니라 공공서비스"라며 "기초 위생시설을 설치하면 물차 사업자의 수입이 줄어든다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한 논리"라고 비유했다.

▲ 브라질 국민 80% 사용하는 대표 결제수단

브라질 중앙은행은 지난 2020년 픽스를 출시했으며 불과 3년 만에 카드 결제를 넘어 브라질 최대 결제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픽스는 브라질 전체 결제 건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용자는 약 1억7천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80%에 달한다.

인도의 UPI, 미국의 FedNow 등 유사한 즉시결제 시스템이 존재하지만 이용 속도와 보급률 측면에서는 픽스가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 세계 각국도 픽스 모델에 관심

브라질 중앙은행은 올해 상반기에만 독일과 캐나다를 비롯한 선진국은 물론 남아프리카공화국, 튀르키예 등 신흥국을 포함한 65개국 금융당국과 픽스 관련 정보 공유 협정을 체결했다.

갈리폴루 총재는 "픽스는 세계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는 모델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 미국 카드업계, 수년간 규제 개선 요구

비자와 마스터카드는 이미 투자자들에게 제출한 공시 자료를 통해 픽스와 같은 국가 주도의 결제 시스템이 자사 사업을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해왔다.

비자와 마스터카드, 메타(Meta) 등이 가입한 미국 정보기술산업협의회(ITI)는 수년 전부터 미국 무역대표부에 브라질 결제시장에서 공정한 경쟁 환경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해왔다.

ITI는 픽스 역시 보다 중립적인 규제 체계 아래 운영돼야 하며 해외 결제 기업들도 브라질 결제시장에 동일한 접근권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가 왜 지금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통상 이슈로 제기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다.

▲ 카드 사용은 늘었지만 점유율은 하락

흥미로운 점은 픽스의 확산 이후에도 신용카드 거래액 자체는 계속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픽스가 약 7천만 명 이상의 신규 금융 이용자를 금융 시스템으로 편입시키면서 전체 금융시장이 확대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제시장 내 점유율은 크게 달라졌다. 신용카드 비중은 픽스 도입 이전 약 20%에서 현재 약 15%로 하락했고, 체크카드는 약 26%에서 10% 수준까지 감소했다.

이는 카드 시장 자체가 축소됐다기보다 즉시결제 서비스가 새로운 결제 방식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변화로 평가된다.

[로이터/연합뉴스 제공]
[로이터/연합뉴스 제공]

▲ 글로벌 결제망으로 확대 가능성

픽스의 영향력은 브라질을 넘어 해외로도 확대되고 있다.

민간 기업들은 미국 등 해외에서도 브라질 국민이 픽스를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구축했으며, 외국인 관광객이 브라질에서 픽스로 결제할 수 있는 시스템도 운영하고 있다.

나아가 각국의 즉시결제 시스템이 향후 상호 연동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는 신흥국을 중심으로 달러 의존도를 낮추려는 움직임과 맞물리면서 미국이 민감하게 바라보는 요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 미국, 중앙은행의 이중 역할 문제 제기

최근 미국 정부는 픽스 운영 자체보다 브라질 중앙은행이 운영자이면서 동시에 규제기관 역할까지 수행하는 구조를 문제 삼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역시 2023년 보고서에서 중국과 인도의 즉시결제 시스템은 운영과 감독 기능이 분리돼 있는 반면 픽스는 중앙은행이 두 역할을 모두 맡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갈리폴루 총재는 "미국이 정확히 무엇을 요구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현재 구조야말로 모든 시장 참여자에게 공정하게 개방된 공공 결제 플랫폼을 유지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반박했다.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은 "누구도 우리의 픽스를 바꾸지 못할 것"이라며 "픽스는 공공 서비스이며 무료이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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