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일본이 약 40년 만의 최저 수준까지 떨어진 엔화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공동 외환시장 개입에 나섰다. 양국 재무당국은 엔저가 일본 경제뿐 아니라 미국 금융시장에도 충격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이례적인 공조를 선택했으며, 필요할 경우 추가 공동 개입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 40년 만의 엔저에 공동 대응 결정
가타야마 사쓰키 일본 재무상은 지난달 31일 미국과 일본 정부가 공동으로 엔화를 매수하는 외환시장 개입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엔화의 과도한 변동성과 무질서한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라며 미국과 긴밀히 협력해 필요하면 추가 공동 개입에도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도 성명을 통해 공동 개입 사실을 공식 확인하면서 양국의 정책 공조를 재확인했다.
▲ 15년 만의 미일 공동 개입…이례적 공조
미국과 일본의 공동 외환시장 개입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주요 7개국(G7) 합의에 따라 시행된 이후 15년 만이다. 당시에는 급격한 엔고를 완화하기 위해 엔화를 매도하는 방식이었지만, 이번에는 반대로 엔저를 막기 위해 엔화를 공동 매수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엔화 약세를 막기 위한 미일 공동 매수 개입은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인 1998년 이후 28년 만이다. 금융위기나 대형 재해와 같은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이뤄졌던 공동 개입이 다시 등장했다는 점에서 시장의 관심이 집중됐다.
▲ 미국도 금융시장 파장 우려
미국이 일본과 공동 대응에 나선 배경에는 엔저가 일본의 물가 상승을 자극하고 이후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일본이 기준금리를 올릴 경우 초저금리 엔화를 빌려 미국 국채와 증시에 투자했던 자금이 일본으로 되돌아가는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발생할 수 있다. 이는 미국 국채 가격 하락과 금리 상승, 글로벌 증시 변동성 확대 등 금융시장 전반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키웠다.
특히 미국 국채 금리 상승은 주택담보대출 금리까지 끌어올릴 수 있어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행정부도 금융시장 안정을 중요하게 고려한 것으로 해석됐다.
▲ 시장 즉각 반응…엔화 가치 급등
공동 개입 발표 이후 도쿄 외환시장에서는 엔화 가치가 빠르게 반등했다. 달러당 엔 환율은 장중 155.31엔까지 하락하며 개입 효과가 즉각 시장에 반영됐다.
앞서 엔화는 달러당 164엔에 근접하며 약 40년 만의 최저 수준까지 떨어져 일본 경제 전반에 부담을 키운 바 있다.
▲ 엔고 전환에 산업별 희비 엇갈려
엔화 가치 상승은 업종별로 서로 다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됐다.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식품 등 수입 의존도가 높은 업종은 수입 단가가 낮아져 비용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반면 자동차 등 일본의 대표적인 수출 산업은 가격 경쟁력이 약화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또한 엔저 효과를 누렸던 외국인 관광객의 일본 여행 비용도 상승해 관광 수요 증가세가 다소 둔화될 가능성도 거론됐다.
▲ "근본 처방 없으면 효과 제한적"
시장에서는 이번 공동 개입이 단기적으로 환율을 안정시키는 효과는 있겠지만 지속성에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미국 투자자문사 클락타워 그룹의 에릭 월러스틴 전략가는 미일 당국도 지금까지의 시장 개입 효과가 일시적이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며 향후 수 분기 동안 개입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가속화와 같은 통화정책 변화가 동반되지 않는다면 효과는 오래 지속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미 브루킹스연구소의 로빈 브룩스 연구원도 엔화 약세의 근본 원인은 일본의 과도한 부채 구조에 있다며 환율 개입만으로는 효과가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결국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포함한 구조적 대응이 병행돼야 엔화 가치가 안정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