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김진수 기자] 장기화되고 있는 부동산 경기 불황으로 인해 주택시장이 좀처럼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꽁꽁 얼어붙어 있는 가운데 정부와 정치권이 서민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서민 중심 주택정책을 펴는 데 집중하면서 유주택자들의 상대적인 박탈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올해 총선과 대선 등 두 차례의 대형 선거로 인해 '양극화 문제'와 '복지'가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면서 이 같은 경향이 더 두드러지고 있다.
이에 따라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는 여건이 되면서도 집을 사지 않고 세입자로 남아 있으려고 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고, 심지어 무주택자가 누리는 혜택을 받기 위해서 스스로 유주택자에서 무주택자가 되는 경우까지도 생겨나고 있다. 한 때는 모든 이들이 '내 집 마련'의 꿈을 꿨지만, 이제는 무주택자로 살아가는 것이 더 나은 상황이 되어가고 있는 것.
2년마다 집을 옮기거나 주인과 갈등을 빚으면서 재계약을 해야 하는 전세살이가 싫어 수억원의 대출을 받아 힘겹게 내 집 마련을 했지만 경기 불황 속에서 많게는 100만원에 가까운 이자를 갚으면서 생활하다보니 삶의 질이 전세로 살 때보다 오히려 더 나빠져 적지 않은 유주택자들이 다시 세입자를 자처하고 있다.
여기에 정부가 무주택자에게 각종 혜택을 주고 있어 은행에 사실상 '월세'를 내며 살아가는 집주인이 되기 보다는 모양새는 별로지만 실속있는 전세로 살면서 무주택자의 혜택을 누리겠다는 유주택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인구·가구 구조와 주거특성 변화' 자료에 따르면, 1995년에서 2010년까지 15년 동안 인구는 397만 명(8.9%), 가구는 438만 가구(33.8%) 증가했다. 이 기간 주택 증가율은 더욱 빨라 15년 동안 무려 511만 호(53.4%)가 늘어났다. 하지만 2010년에도 내 집이 없는 무주택 가구 수는 671만1000가구로 전체의 38.7%에 달하고 있다. 최근 5년 동안에도 주택 증가율이 11%에 달했지만, 무주택 가구는 1% 줄어드는데 그쳤다.
부동산 관계자는 이처럼 무주택자 비율이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들은데다가 정부의 서민주거지원이 강화되면서 집을 사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집값이 더는 오르지 않는 시장의 침체와 정부의 서민 주거 지원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집값이 오르지 않고 있어 시세 차익을 보기 어렵게 된 상황에서 정부의 주택정책으로 인해 무주택자가 누리는 이점이 크게 늘어나면서 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애써 노력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실제 무주택자의 이점은 유주택자보다 여러 면에서 큰 상황이다.
먼저 무주택자는 유주택자가 매년 내야 하는 재산세와 종부세 부담이 없다. 또 청약통장의 소득공제 혜택이 무주택자에게만 주어지기 때문에 세제혜택에서도 유리하다. 4.2%의 저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생애최초주택구입자금 대출도 무자택자만 받을 수 있다. 여기에 임대보증금을 위해 받는 전세자금대출이나 월세 납입금에 대한 소득공제 요건 또한 대폭 확대됐다.
여기에 박원순 서울시장의 장기안심주택제도와 무주택 서민을 대상으로 하는 전셋값 상승분 지원정책으로 더 큰 혜택을 받게 됐다. 박 시장은 세대 월평균 소득이 도시 근로자 가구당 월평균 소득 70% 이하인 무주택 서민을 대상으로 전세 재계약시 전셋값이 연 5% 이상 상승하면 서울시가 상승분을 지원하도록 했다.
사실상 유주택자에 비해 무주택자가 좋지 않은 점은 2년마다 집주인과 재계약을 해야 하는 것 뿐인 상황이 됐다.
여기에다 올해 대선으로 인해 저렴한 임대료를 내면서 편리한 주거 여건을 누릴 수 있어 시장 불황기에 최고의 인기 상품으로 꼽히는 무주택자들만이 입주 자격이 있는 임대주택 입주 여건이 더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무주택자들이 집을 사지 않은 것이 아니라 여전히 집을 살 형편이 되지 않아 살 수 없는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서민지원정책으로 집을 사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 아니라 서민들의 형편으로는 억대를 호가하는 집을 마련하기가 여전히 쉽지 않다는 것이다. 혜택이 부족하다 할지라도 형편만 충분히 된다면 자기 집을 가지는 것보다 마음 편한 일은 없기 때문이다.
또 무주택자들에 대한 혜택이 많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무주택자들도 상황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매매와 전세 모두 거래가 대폭 줄어드는 '거래가뭄'이 이어지면서 무주택 서민들도 애를 태우고 있다. 최근의 거래 가뭄은 심각해 3~4월 이사철에도 거래가 거의 실종됐다.
국토해양부의 ‘주택 매매거래 동향 및 실거래가 자료’에 따르면, 3월 전체 주택 매매 거래량은 전국 6만7541건, 수도권 2만5958건(서울 7646건), 지방 4만1583건에 불과했다. 2월에 비해 수도권 34%(서울 약 39%), 전국은 30%가량 감소했다.
서울의 경우 4월에는 매매거래가 더 줄어들어 24일 현재 주택(아파트 단독 다세대 다가구 포함) 거래량은 3602건에 불과하다.
서울 전세거래도 아파트의 경우 25일 현재 7148건에 불과해 한 달 거래량이 8000건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3월 1만736건에 비해 대폭 감소한 것이다.
거래가 실종된 상태에서 3월말 이후 전셋값마저 하락하면서 전세보증금을 빼내 2∼3년 전에 분양받아 놓은 아파트에 입주하려거나 주택 구입에 나서려는 무주택자들이 큰 혼란을 겪고 있다. 전셋값이 오를 때 보증금을 많이 받은 집주인들이 전셋값이 떨어지자 차액을 주지 못하면서 집을 사려는 세입자들이 전세보증금을 받지 못해 잔금을 치르지 못하고, 이로 인해 이사를 쉽게 하지 못하는 상황이 늘어나고 있는 것.
최근 서울시가 부동산 중개업자 32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임대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이사를 가지 못하는 세입자를 본 적이 있다’는 응답이 41.8%에 달했다. 매매거래 실종이 전세거래 가뭄으로 이어지면서 기존 세입자가 이사도 못가고, 신규 세입자도 구하지 못하면서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 같은 거래가뭄에 대비해 정부가 내놓은 전세자금 대출도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주택을 분양받은 세입자가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경우, 분양 잔금과 이사 비용 마련을 위해 금융권에서 전세금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집주인이 전세대출을 꺼려해 세입자만 속만 태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 거래가뭄 현상이 벌써 3년째 지속되면서 집값은 안정됐지만 거래가 어려워져 이사를 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 무주택자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집값이 안정된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정부가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정책을 탄력 운용하고, 재건축 관련 규제를 완화하고 투기지역 해제요건을 갖춘 서울 강남·서초·송파구에 대해 투기지역 해제 조치를 내리는 등 부동산 정책을 바꿔 주택시장 거래 숨통은 틔워 주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