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대선후보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신도시를 포함해 재건축·재개발 용적률을 500%로 상향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으면서 시장에서 찬반양론이 거세다.
재건축이 어려운 신도시 등지의 정비사업이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반면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 데다 도시계획 측면에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24일 한 부동산 전문가는 "대통령 인수위를 거치며 다듬어지는 공약을 봐야겠지만 실제 시행이 된다면 정비사업에 적잖은 파장을 가져올 정책임엔 틀림없다"고 말했다.
▲4종 일반주거지 신설 "신도시 포함 재건축·재개발 용적률 500%"
여야 유력 대선 후보들이 일제히 대선 공약으로 '정비사업 용적률 500%' 도입을 꺼내 든 것은 전적으로 수도권 1기 신도시와 서울 등 수도권 재건축 추진 단지들의 표심을 겨냥한 것이다.
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 등 수도권 1기 신도시는 지난해 9월 분당 시범단지를 시작으로 오는 2026년까지 29만여가구의 아파트가 차례로 '입주 30년'을 맞아 재건축 연한이 도래한다.
1기 신도시는 현재 용적률이 약 170∼220%로 높아 그간 재건축이 힘들다고 보고 일부 단지들이 리모델링을 추진해왔다. 현재 3종 일반주거지의 재건축 허용 용적률이 250∼300% 이내여서 재건축을 통한 일반분양 수익이 적다 보니 수익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대선 국면을 맞아 지난해 10월 분당 시범·서현 등 21개 아파트 단지 주민이 '분당재건축연합'을 출범시키며 재건축 추진에 불씨를 지폈다.
이에 부응하듯 여야 대선 후보들이 앞다퉈 '용적률 500%' 허용을 공약으로 들고나왔다. 현행 최대 300%인 용적률을 500%까지 올려주면 재건축 등 정비사업에 물꼬가 트일 것이라는 게 여야의 예상이다.
이를 위해서는 신도시를 위한 별도의 특별법을 제정하던지 현재 일반주거지역에서 3종까지 허용된 국토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상 용도지역에 4종을 신설하는 등의 법 제·개정이 필요하다. 도시계획법의 근간이 달라지는 것이다.
대선 후보들의 용적률 500% 공약은 1기 신도시에 국한되지 않는다. 용도지역이 변경되면 서울 강남권은 물론 전국적으로 4종 일반주거지 지정이 가능해 용적률 500%까지 정비사업을 할 수 있다.
▲늘어난 용적률 환수 방식은 달라…李 "세입자에 누구나집" vs 尹 "무주택자 공급" 차이
여야 유력 대선 후보들은 이렇게 종상향(용도지역 변경)으로 늘어난 용적률의 절반 또는 일부는 임대아파트로 건설해 무주택자에게 공급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임대주택 공급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더불어민주당 선대위에 따르면 이 후보는 늘어난 용적률로 건설된 임대주택을 해당 정비사업 단지에 사는 무주택 세입자에게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당초 3종 주거지에서 허용된 300%에서 4종 주거지로 바뀌면서 추가된 200%(전체 500%)에 해당하는 주택의 절반가량을 세입자에게 사전분양가 확정형 분양전환주택(누구나집)으로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누구나집은 1인·청년가구와 동거가 가능한 세대분리형 주택으로 공급해 임대료 수익도 얻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민주당 선대위 관계자는 "10년 임대 기간이 지난 뒤 사전에 약정된 분양가로 싸게 분양전환해 정비사업 후 집주인뿐만 아니라 세입자에게도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주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서울지역 704개 단지, 72만 가구가 적용 대상이 될 것으로 추정했다.
이 후보는 이 경우 주택소유자 재건축 초과이익환수금은 면제하되 개발이익은 광장·문화·복지시설 등 인근 지역주민을 위한 공간으로 환원해 단지 주민이 아닌 일반인도 복리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윤 후보의 공약은 종상향으로 늘어난 용적률의 절반을 '세입자'로 특정하지 않고 무주택 서민을 위한 임대주택으로 공급하겠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또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와 관련해선 "교통유발, 환경부담 등이 생기면 수익자로서 부담하는 차원에서 합리적으로 공공 환수를 하는 게 맞다"며 근본적인 손질 의사를 밝혔다.
▲신도시 재건축 수요 늘지만 고밀 개발 따른 주거환경 악화 우려
전문가들은 일단 용적률이 500%까지 늘어나면 신도시를 중심으로 재건축 수요가 나올 수 있다고 본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신도시 정비사업의 가장 큰 걸림돌은 현재 용적률이 높아 재건축이 어렵다는 점이었는데 용적률을 500%까지 허용해준다면 사업 추진이 본격화될 수 있다"며 "리모델링보다 재건축 선호도가 높아서 이 제도가 실제로 시행되면 기존 리모델링 추진 단지들도 재건축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도시관리의 근간인 용도지역까지 흔들며 용적률을 높이는 부분에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과거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를 필두로 한 도심 주상복합아파트들이 600∼1천%에 육박하는 용적률을 적용받아 지은 적이 있지만 도로가 인접한 상업지역이고, 동간 거리가 넓은 1∼2동짜리 초고층으로 지어져 주거 간섭이 상대적으로 적다.
그러나 상업지역이 아닌 일반주거지역 내에서 500%의 용적률을 적용하면 동간 거리가 좁아져 답답하고 일조권, 사생활 침해 등의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용적률이 늘어나 가구수가 2배가량 증가하면 교통, 상하수도, 학교, 병원 등 기반시설 부족 문제도 필연적으로 뒤따를 수밖에 없다.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김진유 교수는 "용적률을 500%로 높이면 45∼50층 내외의 초고층 아파트를 지어야 하는데 주거환경이 악화할 소지가 크다"며 "땅값이 비싼 도심내 기반시설 추가 확충도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한양대 도시공학과 이창무 교수는 "당장 신도시에 손쉽게 500% 용적률을 부여해 재건축을 하면 나중에 해당 주택이 다시 노후화될 경우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의문"이라며 "무엇보다 도시공간 구조로 볼 때 일산 등 수도권 외곽지역의 신도시는 밀도를 높였을 때 교통 악화, 수요 부족 등 여러 면에서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우려했다.
주택산업연구원 김덕례 주택정책실장도 "도심 한복판을 50층으로 재건축해 콘크리트벽만 바라보며 생활하라는 것이 도시계획적으로 바람직한지 의문"이라며 "나중에 50층 아파트의 재건축을 위해 100층을 허용할 것인지도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용적률 500%가 앞으로 중대 과제로 떠오른 신도시 도시정비의 근본적인 해법이 될 것이냐에 대해 의문 부호를 단다. 신도시 문제는 수도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즉흥적인 해법이 아닌 심도 있는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재건축 사업 부진에 대한 원인 진단이 잘못됐다는 의견도 나온다. 일단 강남권 아파트는 임대아파트 건설에 부정적인 의견이 많다.
J&K도시정비 백준 대표는 "정부가 '2·4 대책'으로 추진하는 공공재건축 사업도 인센티브로 증가한 용적률만큼 임대주택을 지으라고 하니 대부분 하지 않겠다고 발을 빼는 것"이라며 "강남땅에 늘어난 용적률의 절반을 임대로 지으라고 하면 조합들이 수용할지 의문이고, 또 고가의 전세를 사는 강남 세입자에게 분양전환 임대의 우선권을 줘야 하는지도 논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백 대표는 "현재 강남권 재건축 사업이 지지부진한 것은 용적률이 아니라 가구당 수억원에 달하는 재건축 초과이익 부담금과 분양가 상한제 등 기존 규제의 영향이 크다"며 "차라리 이를 손질하는 게 재건축 활성화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차기 정부에서 '용적률 500%' 제도가 도입되더라도 제한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건국대 부동산학과 심교언 교수는 "도심에 공급을 늘리는 방안으로 용적률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시도는 바람직하지만 현실적으로 난관도 많을 것"이라며 "시행을 하더라도 일부 지역, 일부 단지만 선별적으로 채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