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방부가 중국 군사력 현대화에 기여하고 있다고 판단한 중국 기업 명단을 대폭 확대했다.
8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중국군과 연계된 기업 목록을 업데이트하면서 알리바바와 바이두를 포함한 약 20여 개 기업을 새롭게 지정했다.
이에 따라 해당 기업들은 미국 내 사업 활동과 정부 조달 시장에서 추가적인 제약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이번 조치는 미국 정부가 중국의 민간 기술 기업들이 사실상 군사력 강화에 활용되고 있다는 인식을 더욱 강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된다.
▲ AI·반도체 넘어 전기차·로봇까지 확대
이번 명단 확대는 단순히 반도체나 인공지능(AI) 분야에 국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새롭게 포함된 기업에는 전기차 제조업체 BYD(비야디), 제약기업 우시앱텍(WuXi AppTec),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사 유니트리(Unitree) 등이 포함됐다.
미국 외교안보 전문가인 크리스 맥과이어 미국외교협회(CFR) 연구원은 "이번 조치는 미국 정부가 반도체와 AI를 넘어 다양한 중국 산업 분야에서도 국가안보 위험을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이는 중국 첨단산업 전반에 대한 미국의 경계 수위가 한층 높아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 알리바바·바이두 겨냥한 미국의 경고
특히 중국을 대표하는 빅테크 기업인 알리바바와 바이두가 명단에 포함된 점이 가장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알리바바는 전자상거래와 클라우드 사업을 통해 미국 시장과 연결돼 있으며, 바이두는 중국 최대 인터넷 검색기업이자 AI 기술 개발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그동안 미국은 중국의 AI 및 클라우드 기술이 군사적 활용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우려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이번 조치는 중국의 디지털 플랫폼 기업들까지 안보 문제의 범주에 포함시키겠다는 미국 정부의 의지를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 중국 "국가안보 개념 남용" 강력 반발
중국 정부는 즉각 반발했다.
주미 중국대사관 대변인은 미국 국방부가 국가안보 개념을 과도하게 확대 적용하고 있으며, 차별적인 명단을 통해 중국 기업들을 압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국은 미국의 이 같은 조치가 공정 경쟁 원칙을 훼손하고 글로벌 공급망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양국 간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기업 제재 문제가 외교 갈등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 트럼프 행정부의 '이중 전략'
이번 발표 시점도 주목할 만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가을 이후 일부 중국 기업에 대한 제재 계획을 축소하고 추가 관세 부과도 완화하는 등 대중 관계 개선 움직임을 보여왔다.
특히 지난달 열린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 간 정상회담에서는 양국 무역 문제가 핵심 의제로 다뤄졌다.
실제로 이번 명단은 지난 2월 한 차례 공개됐다가 곧바로 철회된 바 있다. 당시 철회 결정은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국 관계를 고려한 조치로 해석됐다.
그러나 이번 재발표는 경제 협력과 안보 경쟁을 분리해 접근하려는 미국 정부의 전략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 "무역 완화와 안보 경쟁은 별개"
안보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미국의 대중국 전략 기조가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한다.
미국 싱크탱크 민주주의수호재단(FDD)의 크레이그 싱글턴 연구원은 "정상회담이 무역 긴장을 완화했을 뿐 중국의 기술 기업들이 군 현대화의 핵심이라는 미국의 판단은 바뀌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즉, 경제 협력 확대와 별개로 첨단 기술 분야에서는 중국 견제가 지속될 것이라는 의미다.
이는 향후 AI, 양자컴퓨팅, 반도체, 로봇 등 전략 산업에서 미국의 규제가 더욱 확대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알리바바[AP/연합뉴스 제공]
▲ 명단 등재 시 실질적 영향은?
국방부 명단에 포함된 기업은 미국 군과 직접 거래할 수 없게 된다.
또한 정부 기관이나 민간 소비자들에게도 부정적 이미지를 줄 수 있어 사업 확장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실제 효과는 기업마다 차이가 있다.
대표적으로 중국 드론 제조업체 DJI는 2022년 명단에 포함됐음에도 미국 소비자 시장에서 여전히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명단 지정이 상징적 의미는 크지만 실질적인 사업 제약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고 분석한다.
▲ TP링크·중국 반도체 기업도 재지정
이번 명단에는 중국계 네트워크 장비 기업 TP링크도 새롭게 포함됐다.
미국 정부는 최근 공급망 안정성과 사이버보안 우려를 이유로 해외 생산 라우터 판매를 제한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TP링크는 미국 내 사업을 위해 별도 법인을 설립했지만, 국가안보 문제와 관련해 여러 연방기관의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중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YMTC(양쯔메모리)와 CXMT(창신메모리)도 다시 명단에 포함됐다.
이들 기업은 지난 2월 발표 당시 제외됐지만 이번 수정 과정에서 재지정됐다.
▲ 법적 분쟁도 이어져
국방부의 지정 절차는 그동안 여러 차례 법적 논란을 불러왔다.
중국 센서 기업 헤사이(Hesai)는 과거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뒤 일시적으로 명단에서 제외된 바 있다.
당시 회사 측은 지정 조치로 인해 기업 이미지 훼손과 주가 하락, 사업 기회 상실 등의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헤사이는 올해 다시 명단에 포함됐다.
이에 따라 향후 지정 기업들의 행정 소송과 법적 대응이 잇따를 가능성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