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주도권을 놓고 삼성전자가 지난달 세계 최초로 7세대 HBM(HBM4E) 12단 샘플 공급을 알린 지 20일 만에 SK하이닉스도 차세대 제품 공급에 뛰어들며 AI 시대 핵심 부품을 향한 치열한 맞불 경쟁이 시작됐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29일 HBM4E(7세대 HBM) 12단 샘플을 세계 최초로 고객사에 공급했다고 밝히며 차세대 HBM 시장 선점의 포문을 열었다. 이는 인공지능(AI) 시대의 핵심 부품인 HBM 시장에서 기술 리더십을 선점하려는 공격적인 행보로 풀이된다.
이에 맞서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 발표 20일 만인 어제(18일), HBM4E 12단 샘플을 주요 고객사에 공급하기 시작하며 즉각적인 추격에 나섰다. HBM 시장 1, 2위를 다투는 두 글로벌 메모리 강자가 나란히 7세대 HBM 샘플을 공급하며, 차세대 고대역폭 메모리 시장 선점 경쟁에 불이 붙었다.
양사의 HBM4E 12단 제품은 48GB 용량에 핀당 데이터 처리 속도 16Gbps로 물리적 성능은 사실상 동등하게 평가된다. 그러나 기술적 차별화를 위한 전략은 확연히 갈린다. 삼성전자는 전작 대비 에너지 효율 16% 개선, 열 저항 특성 14% 이상 개선 등 초미세 하드웨어 스펙 우위를 내세우고 있다. 이는 '저전력 설계와 패키징 구조 최적화 기술'을 통해 달성한 성과다.
SK하이닉스는 이전 세대 HBM4 대비 성능과 전력 효율을 크게 개선했다고 강조하며, 에너지 효율을 20% 이상 높이고 열 저항을 약 17% 낮췄다. 특히 '어드밴스드 MR-MUF(Mass Reflow-Molded Underfill)' 공정 적용을 통해 열 관리 안정성을 핵심 마케팅 포인트로 삼고 있다.
[사진=AI 생성]
황상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개발담당 부사장은 「HBM4E 개발은 저전력 설계를 통해 전력 효율을 극대화하고, 패키징 구조 최적화를 통해 열 저항 특성을 개선하는 데 중점을 뒀다」며, 「향후 32GB 8단, 64GB 16단 등 다양한 제품 라인업으로 고객의 AI 혁신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안현 SK하이닉스 개발총괄 사장은 「HBM4E는 AI 가속기 성능 한계를 돌파할 혁신적인 솔루션이 될 것」이라며, 「기술 초격차를 통해 HBM 시장 리더십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HBM은 대규모 AI 가속기에 필수적인 부품으로, 양사의 올해 1분기 역대급 실적을 견인한 핵심 동력이다. 삼성전자는 1분기 매출 133조 9000억원, 영업이익 57조 2000억원을 기록했으며, 이 중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이 전사 영업이익의 90% 이상을 차지했다. SK하이닉스 역시 매출 52조 5763억원, 영업이익 37조 6103억원을 달성하며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업계는 HBM 시장 선점이 곧 AI 시장 패권으로 이어진다고 보고 있다. 엔비디아가 차세대 AI 가속기 '베라 루빈'에 HBM4E를 탑재할 예정인 만큼, 주요 고객사 확보는 승부의 핵심이다. SK하이닉스는 'HBM 수요가 대형 모델 학습 중심에서 추론·에이전틱 AI 등 다양한 AI 영역으로 확산하며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현재는 샘플 공급이라는 초기 단계지만, 궁극적인 승자는 안정적인 양산 수율 확보와 고객사 최종 품질(퀄) 테스트를 누가 더 빨리 통과하느냐에 달려있다. 미세 공정 기술과 패키징 기술력이 총동원되는 HBM 생산은 높은 수율 확보가 관건이다.
두 글로벌 메모리 강자의 HBM4E 경쟁은 단순한 기술 싸움을 넘어, 미래 AI 시장의 주도권을 결정짓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현재는 샘플 공급이라는 초기 단계이지만, 누가 더 빠르게 안정적인 양산 체계를 구축하고 고객사의 엄격한 품질 테스트를 통과하느냐에 따라 차세대 HBM 시장의 판도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짊어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이들의 자존심을 건 치열한 레이스는 앞으로 더욱 뜨거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