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철강업계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건설 붐에 힘입어 수요 증가의 수혜를 누리고 있지만, 정작 데이터센터와 전력 확보 경쟁을 벌여야 하는 새로운 위기에 직면했다.
AI 산업의 폭발적인 전력 수요가 전기요금을 급격히 끌어올리면서 철강 생산 비용이 크게 증가하고 있어 산업 경쟁력까지 위협받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30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철강업계는 AI 산업과 제조업이 상생하기 위해서는 발전 설비 확충과 전력 공급 정책의 전면적인 개선이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 AI 데이터센터가 만든 '전력 쟁탈전'
미국철강제조협회(Steel Manufacturers Association)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 증가가 철강업체들의 운영 비용을 연간 수천만 달러씩 늘리고 있다고 밝혔다.
철강업계는 데이터센터 건설 증가로 철강 수요는 확대되고 있지만, 동시에 막대한 전력 소비가 전기요금을 끌어올리면서 예상치 못한 부담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JSW스틸 USA의 롭 사이먼 최고경영자(CEO)는 "철강 생산은 전력 의존도가 매우 높은 산업"이라며 "수십 년간 안정적이던 전기요금 체계가 흔들리고 있다"고 우려했다.
▲ 전기요금 급등에 생산원가 부담 확대
오하이오주 캔턴에 위치한 특수강 제조업체 메탈러스(Metallus)는 전기로(Electric Arc Furnace)를 이용해 고철을 녹여 철강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회사는 2024년 이후 전기요금이 약 70% 상승했으며, 이에 따른 추가 비용만 연간 1천500만 달러에 달한다고 밝혔다.
크리스 웨스트브룩스 최고운영책임자(COO)는 미 의회 철강코커스에 제출한 자료에서 "현재와 같은 비용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업계는 전력 비용 상승이 수익성을 크게 악화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 AI 전력 수요 폭증…공급 부족 현실화
메탈러스와 JSW스틸이 위치한 지역은 미국 최대 전력망 운영기관인 PJM 인터커넥션이 관리하고 있다.
PJM은 미국 중서부와 중부 대서양 지역 13개 주에 전력을 공급하고 있으며, 전기로 방식 철강공장이 가장 많이 밀집한 지역이기도 하다.
PJM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도매 전력 가격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6% 급등했다.
이 같은 현상은 AI 데이터센터의 급속한 증가와 맞물려 나타나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 산하 로런스버클리국립연구소는 오는 2030년 데이터센터가 미국 전체 전력 소비의 9.5~15.3%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PJM은 2027년부터 전력 수요가 공급을 6.6기가와트(GW) 초과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원자력발전소 6~7기가가 생산하는 전력량과 맞먹는 규모다.
▲ 철강 생산 차질 우려…데이터센터 우선 공급 가능성
철강업계는 앞으로 전력 부족으로 생산 중단 사례가 늘어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전력 공급이 부족해질 경우 전력회사가 24시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요한 데이터센터를 우선 지원하고, 생산을 일시 중단할 수 있는 철강공장은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제기됐다.
업계는 이러한 상황이 현실화될 경우 미국 제조업 경쟁력에도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했다.
▲ 데이터센터도 철강 의존…상생 구조 필요
아이러니하게도 AI 데이터센터 산업 역시 철강을 대량으로 필요로 한다.
시장 분석에 따르면 데이터센터는 연간 약 100만 톤의 철강을 소비하고 있으며, 시장 규모는 약 14억 달러에 이른다.
미국 건설협회(Associated Builders and Contractors)는 지난 4월 데이터센터 건설 투자액이 계절조정 기준 연율 507억 달러를 기록하며 전년보다 28% 증가했다고 밝혔다.
대형 데이터센터 건물은 철골 구조를 기반으로 건설되며, 내부 서버 역시 철제 랙에 설치되는 만큼 철강 소비가 필수적이다.

(Photo : [로이터/연합뉴스 제공])
▲ 전기로 중심 철강산업, 전력 가격에 민감
현재 미국 철강 생산의 대부분은 전기로 방식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전기로는 과거 미국의 저렴한 전기요금을 기반으로 빠르게 확산됐으며, 하루 평균 40~200메가와트(MW)의 전력을 소비한다.
생산량에 따라 전력 사용량이 달라지지만, 전기요금 상승은 곧바로 제조원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 전력시장도 비상…추가 경매 실시
PJM은 전력 공급 부족에 대응하기 위해 오는 9월 추가 전력 경매를 실시할 예정이다.
기존 경매에서 충분한 발전 용량을 확보하지 못한 데 따른 조치다.
시장에서는 발전사업자들이 역대 최고 수준의 전력 가격을 제시할 가능성이 크며, 이 비용은 향후 대규모 전력 소비 기업들의 전기요금에 반영될 것으로 전망했다.
컨설팅업체 캡스톤의 해나 로저스 연구원은 "현재 전력 공급 여건이 매우 빠듯한 상황"이라며 "데이터센터가 계속 늘어날수록 전력 비용도 지속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 철강업계 "발전소 폐쇄 연기해야"
철강업계는 생산원가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기도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철강 가격은 대부분 시장가격과 연동되는 장기 계약으로 거래되기 때문에 급격한 전기요금 인상을 소비자에게 전가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브랜던 패리스 미국철강제조협회 부회장은 "철강산업은 이익률이 매우 낮아 제조원가가 두세 배 늘어나도 가격에 그대로 반영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협회는 트럼프 행정부와 의회에 노후 발전소의 조기 폐쇄를 연기하고 신규 발전소 건설을 확대하는 긴급 대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또 현재 평균 4년 반이 걸리는 발전시설 인허가 절차를 대폭 단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패리스 부회장은 "지금은 확보할 수 있는 모든 킬로와트와 메가와트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미국 제조업 경쟁력의 핵심 과제가 됐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