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사상 최대 규모인 약 740억 달러(약 115조 1140억원)를 투입해 엔화 방어에 나섰지만, 시장에서는 근본적인 엔화 약세를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금리 격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한 외환시장 개입만으로는 엔화 강세를 이끌기 어렵다는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엔화 가치의 향방이 일본은행(BOJ)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에 더욱 크게 좌우되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 엔화 40년 만에 최저…일본 또 개입 가능성
1일(현지 시각) CNBC에 따르면 엔화는 1일 달러당 162.83엔까지 하락하며 약 40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엔화 가치가 급락하자 시장에서는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이 다시 외환시장에 개입할 것이라는 관측이 확산됐다.
앞서 일본은 지난 4~5월 엔화 방어를 위해 총 11조7천억엔(약 735억달러)을 투입하며 사상 최대 규모의 시장 개입을 단행한 바 있다.
하지만 엔화 약세가 재차 심화되면서 시장에서는 추가 개입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 금리 격차가 엔화 약세의 핵심 원인
투자자들은 외환시장 개입보다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이가 엔화 가치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현재 미국 기준금리는 일본보다 크게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투자자들은 낮은 금리의 엔화를 빌려 미국 달러 자산에 투자하는 이른바 '캐리 트레이드'를 지속하고 있다.
프랭클린 템플턴 연구소의 크리스티 탄 글로벌 투자전략가는 "시장 개입은 투기적 거래를 억제하고 당국의 의지를 보여줄 수는 있지만 금리 차이라는 현실을 바꿀 수는 없다"고 평가했다.
그는 "투자자들이 낮은 금리의 엔화를 빌려 높은 수익률의 달러 자산에 투자하는 구조가 유지되는 한 엔화 약세는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 BOJ 금리 인상에도 미국과 격차 여전
일본은행은 최근 기준금리를 1%까지 인상하며 초저금리 정책에서 점진적으로 벗어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금리 수준과 비교하면 여전히 상당한 차이가 유지되고 있어 엔화 방어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에서는 일본은행이 통화정책 정상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미국의 높은 금리 환경을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 연준의 긴축 장기화 전망이 변수
시장에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당분간 긴축적인 통화정책을 유지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경기와 물가 압력이 계속될 경우 추가 긴축 가능성까지 열려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크리스티 탄 전략가는 "투자자들은 연준과 일본은행 사이의 정책 신뢰도 격차를 가장 큰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미국 금리가 높은 수준을 유지할수록 엔화 약세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 달러 강세가 엔화 약세 부추겨
외환시장 움직임도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올해 들어 엔화는 달러 대비 약 3.9% 하락했지만 유로화 대비 하락폭은 0.9%에 그쳤다.
이는 엔화 자체의 문제보다 달러 강세가 최근 환율 상승을 주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후지쓰의 마르틴 슐츠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엔화와 유로화 환율은 비교적 안정적"이라며 "시장에서는 여전히 일본은행이 다른 주요 중앙은행보다 정책 정상화 속도가 느리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엔화[연합뉴스 제공]
▲ 단독 개입보다 국제 공조 필요
시장 전문가들은 일본의 단독 외환시장 개입 효과가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했다.
티로프라이스의 빈센트 청 공동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시장이 달러당 162~163엔 구간에서 일본 정부의 개입 여부를 주시하고 있으며 조만간 개입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그는 "일본만 개입하고 달러 강세가 지속된다면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며 "과거에도 미국 등 주요국과 공동 개입이 이뤄졌을 때 엔화가 훨씬 강하게 반응했다"고 설명했다.
알렉상드르 드라보비츠 역시 164~165엔 수준이 새로운 개입 기준선이 될 수 있지만 실질적인 효과를 내려면 미국과 일본의 공조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 약한 엔화, 기업에는 호재·가계에는 부담
엔화 약세가 반드시 일본 경제 전체에 부정적인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수출기업들은 해외에서 벌어들인 수익의 원화 환산 가치가 높아지는 효과를 누릴 수 있어 일본 증시는 엔화 약세 속에서도 비교적 견조한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은행이 발표한 최근 단칸(Tankan) 기업경기 조사에서도 대형 제조업체들의 경기 신뢰도는 시장 예상보다 높게 나타났다.
반면 엔화 약세는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가계의 생활비 부담을 키우고 물가 상승 압력도 높이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 성장과 물가 사이 정책 딜레마
사나에 다카이치 일본 총리 정부는 투자 확대와 경제성장을 추진하는 동시에 에너지와 식료품 가격 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각종 보조금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엔화 약세가 장기화될 경우 재정 부담과 물가 상승 압력이 동시에 커질 수 있어 정책 운용이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프랭클린 템플턴의 크리스티 탄 전략가는 "일본 정부는 강한 엔화를 원하지만 이를 위해 필요한 정책적 비용은 충분히 감수하려 하지 않고 있다"고 평가했다.